[데스크칼럼] 전월세 시장 규제의 ‘위험한 유혹’

입력 2020-02-09 11:30 수정 2020-02-0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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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9년. 전세시장에는 기록적인 일이 일어났다. 한 해 동안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무려 29.6%나 급등한 것이다. 전국 평균 전셋값은 22.3% 치솟았다. KB국민은행(옛 주택은행)이 집계를 시작한 1986년 이래 역대 두번째로 높은 전셋값 상승률이다.

당시 3저(저유가·저금리·저달러) 호황과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주택 매매시장과 전세시장이 들썩이자 정치권이 임대차 계약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게 발단이 됐다. 전세금을 2년 동안 올리지 못하도록 하자 미리 한꺼번에 올려받자는 집주인들이 늘면서 전셋값이 급등한 것이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로 최근 강남권 등 서울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주춤한 사이 전세시장이 들썩이자 정부·여당이 전세 대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가시권에 든 전세 대책은 주택 임대차계약 갱신 청구권제와 전·월세 상한제 도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이들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민주당을 필두로 한 정치권에선 총선을 앞두고 전셋값 상승세를 꺾을 대안으로 임대차 계약 갱신 청구권제와 전월세 상한제를 밀고 있는 분위기다. 국회에 관련법도 발의돼 있다.

임대차 계약 갱신 청구권제는 처음 임대계약이 끝난 후에도 다시 임대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세입자가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세입자는 기존 거주기간 2년을 포함해 최대 4년까지 같은 집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다. 전월세 상한제는 말 그대로 전세와 월세 상승률에 제한을 두는 제도다.

취지는 그럴 듯하다. 집주인이 상한선 내에서 가격을 올리면 ‘억’ 소리 나는 전셋값도 누그러뜨려 서민들의 주거 부담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제도인데 왜 논란이 될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이 의도한 대로 움직이지 않아서다. 전세와 월셋값을 잡으려다 오히려 시장 구조를 왜곡시켜 세입자에게 더 큰 피해를 안길 수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예상할 수 있는 게 무리한 가격 통제에 따른 전월세 물량 공급 축소다. 전월세 상한제가 시행되면 집주인들은 전월세 임대로 수익을 올리기가 어려워질 테고, 그러면 전월세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게 뻔하다. 가뜩이나 전세 물량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공급을 더 줄어들게 하는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은 서민들이 더욱 세들어 살 집을 찾기 어렵게 할 뿐이다.

제도 시행 전 집주인이 미리 임대료를 올리는 꼼수를 쓸 수도 있다. 요즘처럼 전셋값이 뛰는 상황에서 집주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면 법 시행 이전에 자구책을 마련할 것이다. 집주인이 일정기간 임대료를 시장의 가치만큼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초기 임대료를 한꺼번에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1989년 주택 임대차계약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났을 때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정부가 계약 갱신 청구권제와 상한제를 시행한다면 집주인들은 너도나도 월전세 가격을 끌어올릴 게 불 보듯 뻔하다. 임대차계약 갱신권 제도와 전월세 상한제가 함께 시행되면 임대료가 1차 계약 기준 최대 11% 오른다는 분석도 있다.

이면계약이 성행할 가능성도 크다. 전월세 가격 인상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계약서에 실제 임대료보다 가격을 낮게 쓰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질 수 있다. 종부세 인상분 등 각종 세금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다. 그야말로 혹 떼려다 혹 하나를 더 붙이는 격이다. 이중계약 및 편법 신고 사례를 단속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행정력을 아무리 동원해도 일일이 적발하기는 힘들다.

이면계약을 통해서도 전월세 부족분에 대한 보충이 안 되면 집주인은 집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것이다. 집을 수리해 상태를 좋게 유지해야 하는데 이를 할 유인이 없어지니 집은 점점 더 낡아질 것이다.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투기를 동원한 공중 폭격이 아니라 임대료 통제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같다.

전세시장 안정 같은 굵직한 민생 현안을 두고 다급해진 정치권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부작용이 속출할 게 뻔한 카드를 쉽게 꺼내 들어선 안 된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당위성에 급급해 인위적으로 민간 임대차시장을 규제할 경우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전월세 문제는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공급 확대’라는 정공법으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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