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 최전선②] "AI로 쓰레기 거르고, 돈도 줘요"...대기업도 '눈독' 폐기물 처리업체 수퍼빈

입력 2022-07-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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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팔 수 있는 폐기물 자동 분류…2000포인트 쌓이면 현금 전환
순환자원 로봇 '네프론' 전국 500여 대 설치…이용자만 16만명

▲서울 여의도공원에 위치한 네프론 오리지널 (수퍼빈)
▲서울 여의도공원에 위치한 네프론 오리지널 (수퍼빈)

#자판기를 연상케하는 기계의 투입구에 빈 페트병을 넣으면 카메라가 폐기물을 인식한다. 투입구 내부 센서가 페트병을 인식한 뒤 미니벨트를 통해 집어삼킨다. 기계는 처리 완료와 함께 포인트가 얼마나 누적됐는지 화면에 메시지를 띄운다.

수퍼빈이 개발한 이 기계는 인공지능(AI) 순환자원 로봇, 네프론이다. 체내에서 노폐물과 독소를 걸러내는 신장의 기능적인 단위 ‘네프론’에서 따왔다. 사용자가 재활용 폐기물을 기계에 넣으면 AI가 자동으로 이를 판독해 분류·수거한다. 깨끗한 상태로 넣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재활용 쓰레기 하나를 넣을 때마다 10포인트를 준다. 포인트가 2000이상 쌓이면 현금으로 전환도 가능하다. 먼 옛날 동네 수퍼에 빈 병을 가져다 주면 십 원 짜리 동전을 주던 익숙한 시스템이다. 바뀐 것이 있다면 아주머니는 수백만개의 데이트를 학습한 인공지능 로봇이, 십 원 짜리 동전은 포인트가 대신한다는 점이다.

네프론의 AI는 700만 개 이상의 학습 데이터를 보유한다. 이를 기반으로 폐기물의 재활용 여부와 종류 등을 판단한다. 폐기물을 넣어 숙제가 잘 되지 않은 폐기물은 바로 뱉어낸다. 병도 받지 않는다.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을 넣으면 역시 그 자리에서 거부한다. 재활용이 가능한 페트병과 알루미늄 캔, 우유팩 등을 수거한다.

▲쓰레기마트 (수퍼빈)
▲쓰레기마트 (수퍼빈)

수퍼빈은 2015년 설립된 창업 7년차 기업이다. 2020년 40여 명에 불과했던 직원 수는 현재 100여 명으로 확대됐다. 2016년 처음으로 출시된 네프론 설치 대수는 이날 기준 전국적으로 500대를 넘는다. 수도권에만 269대가 설치돼 있다. 대기업에선 네이버가 30대에 가까운 네프론을 도입해 사용 중이다. 삼성디스플레이, 우아한형제들, LG전자, 롯데쇼핑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네프론을 사용하고 있다. 올들어 3월까지 네프론의 누적 이용자 수는 약 16만 명에 달한다. 지난해 누적 이용자수(36만 명)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사회 전반적으로 친환경이 핵심 이슈로 부각되고 있고,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나서고 있는 점이 맞물린 영향으로 보인다.

일상일 정도로 우리는 매일 혹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분리수거를 하지만 각 종 캔과 병, 플라스틱은 매립·소각장으로 옮겨지거나 다른 나라에 팔려 쓰레기더미 속에 묻힌다. 깨끗하지 않은 오염된 폐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손을 거친 분리수거 폐기물은 더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버려지고 있다. 네프론이 수거해 압축한 폐기물은 공장으로 옮겨져 잘게 부서진 ‘플레이크’로 재탄생 한다. 플레이크는 롯데케미칼과 SK종합화학 등 국내외 화학 기업들에 판매돼 재생 소재로 재탄생 하게 된다. 오염된 플라스틱 조각은 ㎏당 최대 800원 선에 거래되지만 네프론 플레이크는 두 배인 ㎏당 1500원 수준이다.

▲쓰레기 카페 (수퍼빈)
▲쓰레기 카페 (수퍼빈)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우리가 분리수거 하는 폐기물을 화학기업들은 사가지 않는다. 분리배출 하는 폐기물의 대부분이 소각장으로 향한다”며 “폐기물이 소각 매립장으로 가거나 폐기물 덤핑이 증가한다는 건 생산자가 쓸 수 있는 쓰레기를 선별하는 프로세스가 사회 내에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폐플라스틱을 스팩에 맞게 가공해주는 단계를 필요로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고 있다고 김 대표는 지적한다. 폐기물을 생산자가 되사갈 수 있도록, 생산자가 원하는 스팩에 맞춰 선별해 모으는 것이 바로 수퍼빈 사업의 핵심이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면 재활용하는 폐기물을 늘려 버려지는 폐기물을 줄이게 된다. 이런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수퍼빈은 2015년 미래과학기술지주의 투자 유치를 시작으로 휴맥스, GS칼텍스, 롯데케미칼로부터 투자를 받아 왔다. 현재 KDB, IBK 투자증권, 한국투자파트너스 등이 15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 중이다.

현재 수퍼빈은 경기도 화성시에 플레이크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오는 8월 중순 준공을 앞두고 있다. 약 4200평 부지에 연간 2만 톤의 플레이크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공장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쓰레기 미술관 (수퍼빈)
▲쓰레기 미술관 (수퍼빈)

수퍼빈은 네프론을 간판으로 내세워 프로젝트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쓰레기마트가 대표적이다. 캔과 페트를 네프론에 넣으면 현금 포인트로 전환해주고, 포인트를 이용해 마트 내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수익을 얻기보다 네프론을 홍보하고 버리는 쓰레기를 돈으로 바꿔 물건을 살 수 있는 경험을 주기 위한 문화 체험 공간이다. 팝업스토어 형태로 열린 쓰레기카페, 쓰레기미술관 등이 모두 수퍼빈의 자원 순환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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