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제 발등 찍은 젤렌스키의 방미

입력 2023-10-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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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호 국제경제부장

자국 농산물 수입금지국 맹비난
경솔한 발언으로 우방 신뢰 잃어
전쟁 중에도 ‘감사함’ 잊지말아야

유엔총회 참석차 지난달 미국 뉴욕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결국 상처만 남기게 됐다.

러시아에 맞서 국제사회의 단합을 호소하려 뉴욕을 찾았지만, 정작 젤렌스키 자신이 분열과 갈등의 시발점이 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국산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기로 한 폴란드 등을 가리켜 “정치적 연극을 하고 있다”며 “유럽에 있는 우리 친구 중 일부가 러시아 배우들을 위한 무대 마련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절대 이런 말이 나와서는 안 될 시점에 오히려 최악의 ‘막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발언이 나온 배경에는 폴란드와 헝가리, 슬로바키아의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 금지가 있다.

앞서 유럽연합(EU)은 전쟁으로 흑해 곡물 수출 통로가 막히면서 값싼 우크라이나 농산물이 동유럽과 중부유럽 국가로 밀려 들어오자 현지 농민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일시적으로 5개국에 대해서는 농산물 경유만 허용했다. 해당 조치가 지난달 15일 만료되자 폴란드와 헝가리, 슬로바키아는 자체적으로 수입 금지 조치를 연장했다.

EU 회원국 중 거의 유일하게 친러시아 성향인 헝가리는 제쳐 놓더라도 우크라이나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폴란드와 슬로바키아가 해당 조치를 취한 배경을 젤렌스키는 이해했어야 했다. 두 국가 정부 모두 선거를 앞두고 농민 유권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어려운 사정은 전혀 고려치 않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오히려 지난달 18일 이들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다고 선언한 뒤 젤렌스키의 ‘폭탄 발언’까지 나온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로의 무기 공급 중단까지 선언했다가 철회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지난달 30일 치러진 총선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중단을 주장하는 로베르토 피초 전 총리의 사회민주당이 약 23%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물론 농업은 우크라이나에 있어서 국제 경쟁력이 있는 몇 안 되는 산업 중 하나여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국에 불리한 통상조건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솔한 발언으로 자국에 대한 서구권의 단결된 지지를 위태롭게 한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젤렌스키는 폴란드 등 유럽의 친구들은 물론 한국의 뒤통수마저 쳤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독일과 일본, 인도, 아프리카연합(AU), 중남미 국가(사실상 브라질) 등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를 추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창 전쟁 중인 나라의 수장이 자국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국가들에 외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담을 지운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유엔에는 매우 유명한 비공식 그룹인 ‘커피클럽’이 있다. ‘합의를 위한 단결(Uniting for Consensus)’이 정식 명칭인 커피클럽의 유일한 목적은 일본과 인도, 독일, 브라질 등 이른바 ‘G4’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막는 것이다. 커피클럽의 주축인 한국이 최근 일본과 사이가 아무리 가까워졌다 하더라도 상임이사국에 들어가는 것까지 찬성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가 세계 2위 군사강국인 러시아와 지금껏 전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도 분명히 포함된다. 단적인 예로 폴란드가 우수한 한국 무기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우크라이나에 자국의 기존 군사장비를 지원할 수 있었을까.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뉴욕 방문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다른 나라의 전폭적인 도움에 대한 고마움과 겸손함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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