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다시 '유럽의 병자' 어른거리는 독일

입력 2023-12-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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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통일 이후, 독일은 유럽 내 인구·경제대국이 되었다. 통일 직후 10여 년, 막대한 통일비용을 치르며 흡수통일의 여파를 오롯이 감내했던 독일은 당시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로 지칭되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독일경제는 통일비용 부담 누적에 따른 여파와 노동시장 경직성, 금융시스템 부실 등으로 대변되는 경제개혁 부진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2010년대 유럽재정위기의 파고를 거치는 중에도, 약 10년간 독일은 연평균 2% 경제성장을 달성하며 성장하였다. 해당 시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독일은 예산 흑자를 나타냈으며, 수출 호황을 누리며 유럽경제를 선도하였다. 장기간 경기 불황을 겪던 경제대국이 터닝포인트를 거쳐 다시 경제성장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독일의 사례는 분석 대상이 되어왔다.

디지털 전환 물결 못타 변화에 뒤져

독일통일 이후 30여 년, 독일은 포스트 통일 세대가 인구 및 경제적 측면에서 안정적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독일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코로나 확산 시기를 거치며, 주요 국가들이 일제히 경기 침체를 겪었으나, 최근 다수의 국가가 경기 회복을 맞이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측에 의하면, 유로존 20개 국가의 평균성장률이 0.9%인데 비해, 독일은 0.3%에 그칠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경제의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속속 전해지는 가운데, 독일이 다시 한 번 ‘유럽의 병자’가 될 것인가 논의가 한창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대외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주요 20개국(G20)의 무역의존도 순위가 네덜란드(156%), 독일(89%), 멕시코(8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 시기의 교역 위축, 미중 갈등에 의한 대중국 무역 감소는 독일경제에 타격을 입혔다. 2021년까지만 해도 독일의 두 번째로 큰 수출 시장이었던 중국은 경제안보 위협국이 되었다. 2011년 탈원전 선언 이후 재생에너지의 전환 시기까지 완충역할을 했어야 할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는 전쟁으로 인해 수입 제한이 된 것이다.

이러한 표면적 원인이 있으나, 전문가들은 독일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독일과 같은 경직된 사회구조의 국가는 전환의 시기를 맞이했을 때 어떠한 변화도 단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의 디지털화, 화석연료 자동차의 EV(전기차)화 등 국제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개혁이 필요할 때 변화를 결정하지 않으면 경제둔화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석탄과 석유를 다시 사용하며, 에너지 전환의 시기를 견뎌야 하는 독일은 기존 에너지 전환에 걸렸던 승인 과정과 규제가 여전히 간소화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받는다. 독일 내에서는 유럽 최대 자동차그룹인 폭스바겐에서 2005년 대규모 비리 스캔들이 터지지 않았다면 그나마도 EV화가 더욱 늦어졌을 것이라는 자조섞인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포용적 이민·난민 정책, 노동력 부족 해소

독일은 또 다시 ‘유럽의 병자’가 될 것인가. 여러 경제지표가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으나, 독일의 저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대부분 주요국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국가의 인구구조 문제에서 독일은 한결 가벼운 모습이다. 독일은 이민법 개정과 포용적 이민 및 난민 정책을 통해 노동력 부족을 해소해 왔다. 대규모 이민 및 난민에도 기록적 수준의 고용과 탄탄한 공공 재정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독일이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여 여러 개혁의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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