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래 칼럼] ‘교육 근본주의’를 일소해야 한다

입력 2024-01-16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학령인구 줄어 남아도는 교육재원
대학·평생교육 재정으로 투입할만
일부 교육청 반대는 집단이기주의
교육예산 바로잡을 법개정 시급해

40여 년 교육학자로서 갖는 상반된 감정이 있다. 우선 철학, 심리학, 사회학, 정치이론을 비롯한 교육 관련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섭렵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이는 교육이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반면 ‘교육 백년지대계’라는 명분 아래 교육학자들조차 교육 최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교육 집단이기주의로 몰고 가는 현실에 대한 자괴감이다. 이는 교육이 마치 고립된 사회적 진공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교육 근본주의’로 이어진다.

국가경제규모 증대에 따른 세수가 늘고 학령인구 감소로 재원 수요가 줄어든 데 따라 지방교육교부금과 교육세로 걷힌 초·증등교육 재정 중 2023년 말 기준 사용하지 못한 교육예산이 7조 5000억여 원에 달한다. 이 재원을 다른 교육 관련 수요가 있는 데에 사용하자는 제안에 반대하는 데서 편협한 교육 근본주의를 엿볼 수 있다.

지방교육교부금법 제3조 2항에 따라 내국세 20.79%를 교육예산으로 강제적으로 할당하고 이와 별도로 교육세법에 따라 교육세를 징수한다. 1971년 제정되어 수차에 걸친 개정 끝에 1993년부터 시행된 교부금법은 ‘특별한 재정 수요가 있을 때’ 교육특별교부금의 교부를 규정하고 있다. 1982년 한시적 목적세로 도입되었던 교육세는 1992년부터 다른 세금에 덧붙이는 부과세와 영구세로 전환되었다. 두 법은 교육 재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교육 발전을 견인하였고, 그 결과 오래전에 초·중등 교원 실질 임금이 룩셈부르크와 스위스에 이어 세계 3∼4위에 오르게 하였다. 하지만 교육 최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한 작금의 부작용도 낳았다.

이러한 잉여 교육 재원을 두 가지로 전용하자는 데서 일부 교육감과 교육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하나는 일부 재정을 떼어내서 저출산 정책에 활용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 및 평생교육 재정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저출산이 교육과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반발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삶의 전 분야와 관련된 교육은 사회적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저출산 정책만이 아니라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평생교육 예산으로 전용하는 것은 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적극 추진해야 할 문제다. 고등교육에 전용하는 문제도 현 대학 교육 현실에 비추어 매우 시급하다. 대학 등록금은 계속 동결하면서 남는 교육예산조차 대학으로 전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서울교육감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예산 전용 정부 방침이 ‘임시방편이자 반교육적인 행위’라고 비난한 바 있다. 오히려 ‘돈이 남아돌아도 대학에는 못 준다’는 그들의 반응이 반교육적 행태다. 보도에 따르면, 학생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는데도 올해 서울교육청 예산은 작년보다 21.7% 늘어난 12조 8000억 원 규모로, 47조 원 규모인 서울시 예산의 6.8% 증가보다 3배 많다.

교육재정의 과도하고 그릇된 지출 사례들이 여러 차례 심층적으로 보도되었다. 필자는 교육 참관 및 지도 현장에서 남아도는 초등학교 교실에다 아이들이 사용하지도 못할 목공 선반과 같은 장비들을 설치해 놓고 ‘학생사용금지’라는 푯말이 붙은 장면을 목격한 바 있다. 이처럼 보도되지 않은 교육예산 남용 사례는 부지기수로 많다.

교육예산이 국가재정에서 무조건 최우선 할당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국가재정이 열악했던 1980년대까지는 정당화될 수 있다. 이후 국가재정 규모의 획기적 증대와 학령인구의 현격한 감소 현실에 비추어 이를 교조적으로 교육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잘못된 교육재정은 기본적 틀부터 다시 짜고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 관련 법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 집단이기주의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21세기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에 상응하는 미지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창의교육의 핵심임을 인정한다면 교육재정이 소요되는 곳을 보다 넓은 시야에서 찾아야 한다.교육 백년지대계의 뜻은 사회적으로 촘촘히 연계된 ‘교육’을 따로 떼어내 우선권을 외치는 교육 근본주의라는 사회 병리현상도 아니며, 교육감이 근시안적 소견으로 교육예산을 쌈짓돈처럼 틀어잡으라는 것도 아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내년도 의대 증원분 1469명·총정원 4487명…법원 제동 ‘변수’, 입시 혼란↑
  • "제로 소주만 마셨는데"…믿고 먹은 '제로'의 배신?
  • "긴 휴가가 좋지는 않아"…가족여행은 2~3일이 제격 [데이터클립]
  • PSG, '챔스 4강' 1차전 원정 패배…이강인은 결장
  • '미스코리아·하버드 출신' 금나나, 30세 연상 재벌과 결혼설
  • 경기북도 새이름 '평화누리특별자치도'…주민들은 반대?
  • "하이브 주장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려드립니다" 어도어 민희진 입장 표명
  • '롯데의 봄'도 이젠 옛말…거인 군단, 총체적 난국 타개할 수 있나 [프로야구 2일 경기 일정]
  • 오늘의 상승종목

  • 05.02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83,243,000
    • +0.77%
    • 이더리움
    • 4,223,000
    • -0.33%
    • 비트코인 캐시
    • 606,000
    • +1.08%
    • 리플
    • 733
    • -0.27%
    • 솔라나
    • 194,700
    • +1.83%
    • 에이다
    • 644
    • +0%
    • 이오스
    • 1,162
    • +4.5%
    • 트론
    • 173
    • +0.58%
    • 스텔라루멘
    • 156
    • -0.64%
    • 비트코인에스브이
    • 84,150
    • +0.3%
    • 체인링크
    • 19,200
    • +1.69%
    • 샌드박스
    • 615
    • +1.99%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