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도심 녹색공간은 ‘생물의 오아시스’

입력 2024-04-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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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학 선배 SNS에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가로수 사진인데, ‘깍두기 머리’ 스타일로 가지치기 당한 모습이었다. 참 흉하기도 하고, 가지를 솎아내고 길이를 줄이는 일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선배 말마따나 ‘수격(樹格)’을 지켜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일인 줄은 알지만 잔가지들이 모두 잘려 뭉툭해진 나무를 보는 건 좀 그렇다. 붉은 흙이 다 드러나도록 깔끔하게 정리된 단지 내 화단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한낱 잡초로 여겨져 뜯겨진 그 풀들이 ‘어떤 생명체에게는 따뜻한 집이었을 텐데’라는 생각 때문인지 보고 있으면 마음이 언짢다. 단지 내 작은 녹색 공간은 우리 눈을 위해서만 있는 게 아니다.

단지 내 ‘육생비오톱’, 다양한 곤충들 삶의 터

조경이 훌륭한 아파트 단지 안이나 관청 주위에 ‘육생 비오톱’이란 푯말이 서있는 경우가 있다. 비오톱은 그리스어로 생명을 뜻하는 비오스(bios)와 땅 혹은 영역을 의미하는 토포스(topos)의 합성어다. 다시 말하자면 육생 비오톱은 육지에 사는 생물의 서식지를 뜻한다. 유사한 생태보호 공간으로 ‘수생 비오톱’ 즉 생태 연못도 있다. 여기엔 이런저런 물고기가 살거나 도심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올챙이, 소금쟁이 따위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요즘은 도시에서도 녹색공간을 찾는 게 아주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생물종이 풍부한 자연과는 거리가 멀다고 인식된다. 풀과 나무 그리고 거기에 깃들어 사는 새와 벌, 곤충과 벌레라는 원주민이 쫓겨나고 고층 사무실이나 아파트 같은 거주지로 채워진 게 도시다. 게다가 길은 아스팔트로 도배되어 있다.

서식지를 잃은 생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이 안에서 꽤 오랫동안 고통을 당했고, 언젠가부터 이건 아니다 싶어 인위적으로 하나둘 만든 생태보호 시설이 이런 비오톱이다.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효과도 있지만 자취를 감춘 동식물에게 살 곳을 다시 내 줄 테니 돌아오라 유혹하기 위한 공간이다. 얼마 전 거실 유리 창에 붙은 도롱뇽이 붙어 있는 걸 봤다. 갑작스러운 눈 맞춤에 나도 그 귀여운 생명체도 적잖이 당황했지만, 집 근처의 무성한 나무와 풀 덕분에 가능했던 기분 좋은 경험이다.

최근 독일에서 발표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에는 우리 생각보다 더 다양한 생물종이 산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베를린의 아들러게슈텔 (Adlergestell)이란 특정 도로를 중심으로 진행된 곤충 동물군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이 곳에 무려 450종 이상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 중에는 멸종 위기에 속한 곤충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들러게슈텔은 베를린에서 가장 긴, 왕복 10차선 도로이다. 이곳에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는 좁은 화단이 도로 방향으로 길게 조성돼 있다. 차량들이 뿜어내는 배기가스는 말할 것도 없고 여름이면 차도에서 올라오는 막대한 지열이나 한겨울 추위와 바람 때문에 생명체가 견뎌낼 만한 곳으로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모니터링을 시작하기 전 기존 식물을 제거하고, 열과 가뭄에 강한 종을 심고 토양도 교체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다양한 곤충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기껏해야 파리나 개미, 벌 몇 종만이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모니터링 첫 해에만 근 11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곤충의 서식이 확인됐다. 아마도 교체된 토양과 태양 열복사선이 이곳을 원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서식이 가능해진 걸로 추측된다. 여기에 사람 손길이 자주 닿지 않는 것도 한몫한 걸로 보고 있다. 말하자면 반복 사용으로 지력이 떨어진 땅이 아니란 의미다.

녹색공간 정비, 깃들어사는 생물 고려해야

대로 한 가운데 화단이 생물다양성 보존의 잠재력을 가졌다는 결과를 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녹색 공간의 정비는 인간 눈에 비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곳에 사는 생물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조경과 관련해 좀 고쳤으면 하는 걸 꺼내본다.

일례로 겨울로 접어들면 단지 내 화단에는 거의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들어 지저분해 보이는 꽃이나 풀을 모두 뽑고 베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잎에 붙어 동면을 취하는 곤충들도 있으니 추운 계절에도 풀을 조금은 남겨 두는 게 좋다. 그리고 너무 자주 또 지나치게 짧게 제초를 하는 것도 역시 곤충 동물군의 생활 공간을 뺏는 행위다. 제초 간격을 좀 늘리거나 부분 제초로 곤충이 퇴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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