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사재기… 베스트셀러가 뭐길래 [홍샛별의 별별얘기]

입력 2014-03-31 11:04 수정 2014-03-3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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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싶은데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 많은 사람은 베스트셀러 목록을 훑는다. 마치 영화를 선택하기 전 박스오피스 순위를 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진=뉴시스)

사람들은 문화콘텐츠를 소비할 때 타인의 소비량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는 문화 콘텐츠의 경험재(Experience Goods)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경험재란, 실제 서비스와 상품을 구입하고 사용한 후에야 비로소 그 서비스 상품의 질과 특성을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뉴시스)

책을 읽기 전 사람들은 도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읽지 않고는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구입하기 전 사람들의 반응을 중요하게 여긴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행위다. 사람들은 보다 많은 사람이 선택한 책에 신뢰를 갖게 되고, 이때 베스트셀러는 사람들의 구매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런 이유로, 많은 출판사는 베스트셀러 조작의 유혹을 받는다. 베스트셀러에 일단 진입하면 책의 판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몇몇 출판사들은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도서를 사재기한다. 정가 1만원의 책을 60% 가격으로 대형서점에 공급하고, 이를 다시 사들이면 한 권당 4000원 비용이 발생한다. 1주일에 2000만원이면 대형 서점에서 5000권을 한꺼번에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재기가 웬만한 도서 마케팅보다 효과적인 이유다.

미국에서 유명한 책 사재기 사건이 있었다. 1995년 한 경영컨설턴트가 주변 사람들에게 미국 곳곳에서 자신의 책을 사도록 시켰고, 이들이 구입한 책만 1만권에 달했다. 미국 전역에서 무려 23만권의 책이 팔려 15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 톱 10을 지키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이를 의심한 출판업자들의 신고로 사재기 행위가 적발됐다.

(사진=뉴시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5월 출판사 자음과모음은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와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사재기해 베스트셀러를 조작한 혐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황석영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재기는 작가의 명예에 심한 손상을 입히는 일이고, 문학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며 ‘여울물 소리’ 절판을 선언했다. 출판계도 지난해 10월 출판사 회원 자격 박탈과 해당 도서의 베스트셀러 목록 제외 등 강도 높은 규제안이 담긴 자율협약에 합의했다.

하지만 최근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재기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지난 21일 출판유통심의위원회는 인사이트북스가 자기계발서 ‘99℃’를 사재기했다고 합의했다. 이는 자율협약 체결 이후 두 번째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도 한경BP의 도서 두 권을 사재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더이상 출판업계의 자성에만 기댈 수 없는 노릇이다. 사재기로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하는 것도 문제지만, 베스트셀러 도서를 무비판적으로 구매하는 독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독자들도 이제 베스트셀러라는 편리한 구매 리스트에 대한 의존도를 조금씩 벗어나야 한다.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다. 또한 베스트셀러라고 항상 재밌고 흥미롭지 않다. 경험재라는 도서의 특성상 개인의 취향이 도서의 만족도와 가치를 좌우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도서를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점을 방문해 직접 책을 고르는 여유가 필요하다. 주도적인 책읽기가 반복되면 도서를 고르는 감식안은 저절로 길러진다.

이번 주에는 집 앞 가까운 서점을 방문해보자. ‘사각사각’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듣고 잉크를 품은 책 냄새도 맡으며 책을 골라보자. 내가 고르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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