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정부 전세 대책의 허구

입력 2014-10-0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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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

말로는 온갖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였지만 이른바 ‘최경환 노믹스’의 핵심은 ‘집값 떠받치기’였다. 최 부총리는 취임하기도 전에 주택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이라고 큰소리쳤고, 실제로 주택대출 규제를 과감히 풀었다. 재건축 허용연한 완화와 신도시 택지개발 중단 등을 내세운 9·1대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속내는 늘 지금의 집값을 떠받치는 것이었지만, 정부는 ‘서민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 속내와 명분을 이어주는 논리가 ‘집값 상승에 따른 전세 안정화론’이었다. 즉, 사람들에게 집값 상승 기대감을 심어주면 전세수요가 매매시장으로 이동해서 전셋값이 떨어진다는 게 정부 주장이었다. 이는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 그리고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른바 ‘부동산 전문가’들의 주장이었는데 이를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른바 ‘인지 포획’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이 정말 맞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주택대출 규제를 풀고 ‘9·1대책’이 나온 뒤 서울 강남 재건축단지 등 일부 지역 집값이 올랐지만 전세가가 과연 안정됐나. 오히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의 전셋값 상승세를 전하는 한 신문이 ‘9·1대책에도 불구하고’라고 썼는데,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정부 대책 ‘때문에’ 전셋값이 오르는 거다.

시장의 가격조절 기능에 따라 일정한 수준까지 부동산 거품을 빼면 전세가도 따라서 빠지게 돼 있다. 지금 전세가가 오르는 것은 보증금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안전한 전세’ 공급이 부족한 탓이 크다. 전세 물량은 많아 보여도 실제로 세입자들이 세를 들 수 있는 진짜 물량은 크게 줄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집값 떠받치기로 빚을 가진 많은 집주인들이 이자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는 것이 전세 물량 축소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집주인의 빚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사실 정부가 부동산시장의 가격 조정 압력을 교란하지 않고, 가계의 부채 다이어트를 적극 유도하면 지금 생기는 전월세난 문제는 상당 부분 풀리게 된다. 그런데 그 같은 시장의 가격조정을 정부가 억지로 가로막으니 주택시장 침체는 길어지고, 전월세난으로 서민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될 뿐이다. 물론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서 금융시스템 위기로 치닫는 것은 최대한 막아야 하지만, 지금처럼 집값 떠받치기로 일관하는 정책은 문제만 악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정부의 근본적인 태도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금처럼 부동산업계나 건설업계, 다주택자 등 부동산 부자들을 위해 억지로 집값을 떠받치려는 시도는 서민들의 고통만 낳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집값이 일정한 수준까지 하락하고, 그 과정에서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는 것이 전세난을 완화하고 인구감소 및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주택정책을 마련하는 첫 걸음이다. 그것이 또한 길게 보면 부동산 거래도 살리고 전세가도 안정시키며 한국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지금 정부처럼 하면 매도자와 매수자의 기대가격 괴리만 커져서 부동산시장 침체가 길어지고 부동산 버블의 에너지인 가계부채만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갈 수 있나. 이미 지난 2분기 미국의 분기 성장률이 크게 호전되면서 미국 경기 회복세는 빨라지는 가운데 내년 하반기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최근 며칠 새 국내 증시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떨어지고 환율이 급등하는 것은 벌써 미국 금리 인상 전망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진 것만으로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데, 여전히 ‘빚 내서 집 사라’는 정책기조를 답습하는 한국정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다. ‘내 임기 안에만 탈 없으면 된다’는 식의 생각에 젖어 위험한 폭탄 돌리기를 하는 꼴이다. 하지만 그 폭탄 돌리기가 국민을 위한 것인가, 정권을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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