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환풍구' 전국 곳곳에 산재…추락 위험 도사려

입력 2014-10-20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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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명의 사상자를 낸 '죽음의 환풍구'는 경기도 판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명피해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유형의 사고는 과거에도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환풍구의 안전관리 기준을 규정한 관련 법규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환풍구는 안전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환풍구 안전관리 법규 제정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 보행자 집어삼키는 환풍구…추락 사고 과거에도 속출

1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모 백화점 지하 6층 환기구에 고교생 A(17) 군이 추락해 숨졌다.

A군은 백화점 앞 공원에 있는 높이 1.1m 가량인 환기구 위에 올라갔다가 덮개가 열려 있는 바람에 15m 아래로 추락해 변을 당했다.

작년 9월 9일 경기도 부천에서는 화단에서 청소 작업을 하던 근로자 B(59)씨가 환기구 위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줍다가 18m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다.

작년 3월에도 서울 양천구 아파트 단지에서 C(19)양이 야외에 설치된 10m 깊이의 환풍구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C양은 아파트 지하실과 연결된 환풍구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아 깊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무심코 들어갔다가 떨어졌던 것으로 조사됐다.

2009년 경기도 화성에서도 아파트단지 환풍구 위에서 뛰어놀던 D(당시 14살)군이 환풍구 지붕이 깨지면서 7m 아래 지하주차장으로 추락, 두개골이 골절되고 뇌신경이 손상되는 영구 장애를 입었다.

D군 부모는 아파트 관리회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 1억2천여만원의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받기도 했다.

◇ 사고현장 주변 환풍구 그대로 방치…실태 파악 '뒷북'

이처럼 환풍구 관련 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도심 곳곳의 환풍구는 19일 현재까지도 아무런 안전 보강 조치 없이 방치되고 있다.

추락사건이 발생한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에서 불과 10m 떨어진 곳의 환풍구는 지상과 이어져 설치돼 있지만 위험 표시 등 아무런 안전 표식이 없었다. 시민들은 불안한 마음에 환풍구 위로 걷지 않고 환풍구를 피해 돌아가기도 했다.

정부와 각 시·도는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환풍구 현황을 파악하며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뒷북 대응'에 분주한 모습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8일 시·도 등 관계기관에 환기 구조물 등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

안전점검 대상은 사람들이 통행하거나 모였을 때 노출되는 도로, 공원, 광장, 건축물, 대지 내 공지에 설치된 환기 구조물과 채광창 등이다.

부산시는 20일 오전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도심 내 환풍구 일제점검에 들어간다. 이 결과를 토대로 문제점을 분석하고 안전관리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부산시는 오는 25일 100만명 이상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광안리 불꽃축제 행사장 주변 환풍구를 시작으로 단계별로 일제점검을 벌일 계획이다.

광주시는 지하철 1호선 주변도로에 설치된 지하 환풍구와 도로, 공원, 광장에 설치된 환기 구조물에 대해 1차 안전점검을 벌인 뒤 위험 요소가 발견되면 전문인력을 투입해 정밀점검하고 종합적인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 환풍구 안전기준 관련법 부재…대책 마련 시급

전문가들은 현재 환풍구 안전기준을 규정한 관련법이 전혀 없는 실정이라며 하루빨리 환풍구 관련 법규를 마련하고 안전관리 기준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령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11조에는 '공동주택 및 다중이용시설의 환기설비 기준'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환기량과 환풍 주기 등만 규정했을 뿐 덮개의 하중기준이나 환풍구 주변 위험 경고표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전문가들은 지상의 환풍구 덮개가 사람이 올라가거나 물건을 두기 위한 용도로 설치된 것은 아니지만 보행자의 접근이 쉬운 만큼 환풍구 주변에 울타리를 치거나 환풍구 하중을 강화하도록 관련 법규가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사고가 난 환풍구는 건물 주차장 시설이기 때문에 지하철 환풍구와 달리 설계기준이 엄격하지 않다"며 "환풍구 주변은 공기 질이 나쁘기 때문에 일반인 접근이 쉽지 않도록 펜스를 설치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창신건축사무소 이장규 건축사는 "환풍구 입구에 골조나 H빔 등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철제 덮개를 설치했다면 이런 참변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현행 건축법상 환풍구에 대한 별도 규제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아울러 야외광장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지자체별 광장의 사용 기준을 명확하게 정비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성남시는 사고가 발생한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몰 야외광장을 일반 광장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공연 개최를 위한 사전 승인 및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의 경우 광장 종류와 상관없이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등 광장별로 각각 조례를 만들어 행사를 개최할 때 시장에게 사용신고서를 제출하고 시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대규모 야외 행사를 앞두고 경찰이나 소방당국이 명확한 점검 기준에 따라 안전 점검을 할 수 있으려면 지자체마다 다른 광장 사용 조례를 일정 부분 통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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