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경영자들...지금은 어디서 무엇하나

입력 2006-10-02 13:36 수정 2006-10-0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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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승 전 SK 회장·김선홍 전 기아차 회장·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등

“40여년을 SK와 같이 살아왔습니다. SK의 빛과 그늘을 함께 받아 왔습니다.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부실을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면서 모든 책임이 저에게 돌아오도록 했습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항상 가르쳤던 것처럼 권한 이임은 가능하나 책임은 이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2004년 6월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은 20분에 걸쳐 최후 진술을 낭독했다. 손 회장은 법인세 포탈과 불법 정치자금 제공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대졸 평사원으로 입사해 3대 그룹 총수에 오른 한국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 손길승 전 회장은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년이 지난 요즘 손 회장의 행보가 조심스럽게 감지되고 있다. 일생일대의 숙원사업이었던 SK의 50년 사사(社史)를 직접 교정보고 수정하며 출간했다.

손 회장은 그동안 ‘최태원 SK회장의 경영’에 누가 될 수 있다며 대외 행사에 일절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만나는 인사 또한 극히 제한적이었던 점을 비춰보면 손 회장의 최근 행보는 매우 이례적이다.

비리경영, 정격유착, 경영권 다툼 등 이런저런 이유로 현역에서 물러난 소위 비운(悲運)의 거물급 경제인들의 최근 행보가 바빠지고 있다.

이들은 낙마(落馬)후에도 끊임없이 ‘부활의 노래’를 부르며 재기의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일부는 재기의 단맛을 보고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절치부심(切齒腐心) 중이다.

재계에서 자의반 타의반 퇴출된 거물급 경제인의 근황을 추적해봤다.

◆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

지난 8월 언론에선 광복절 경제인 사면에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이 포함될 수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손 회장은 사면대상 명단에 빠져있었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은 손 회장은 현재 대법원의 상고를 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사면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면기사가 줄지어 언론에 나온 이유는 손길승 전 회장이 한때 오너 이상으로 SK그룹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스타경영자였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지난 2004년 1월부터 8개월 가량 수감생활을 마친 후 보석으로 풀려난 뒤 고 최종현 회장의 묘소를 찾은 것을 제외하곤 2년여 동안 공식석상은 물론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일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손 회장의 행보가 포착된 것은 얼마 전에 출판된 SK의 50년 사사(社史)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터다. 손 회장은 그룹의 고문직을 맡아 그룹 탄생 50년을 맞았던 2003년에 50년 사사(社史)를 출간하려했다.

그러나 SK글로벌의 분식회계사건이 터지면서 우여곡절 끝에 3년이 넘기고서야 빛을 보게 된 것이다.

SK측은 “사사를 편찬하면서 초안은 물론 상당부분의 내용들이 손 전 회장이 직접 챙겼다”고 밝혔다. 손 전 회장은 최태원 회장이 직접 마련해준 워커힐 호텔의 별관 사무실에서 사사 발간을 위한 작업을 진행했고, 외부 인사들과 교류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측에 따르면 손 고문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남아 있는 상황인지라 외부활동을 극히 자제해오고 있지만 그룹쪽과 여전히 끈끈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최태원 회장도 손 고문에게 회장 예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

지난해 안기부(현 국정원)가 불법도청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소위 도청파문이 삼성을 강타한 적이 있다. 도청내용가운데 삼성이 기아차 인수를 위해 ‘모종의 작업’을 했던 대화가 공개되면서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은 도청내용이 공개되자 같은 해 7월 언론과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기아차 사태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김 회장은 지난 2003년 8월 평화자동차 고문으로 현업에 복귀해 재기의 의욕을 보여주고 있었던 때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언론과의 인터뷰 3달만에 고문직을 특별한 이유 없이 그만두면서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김선홍 회장은 1958년 1월 기아산업의 말단사원으로 시작해서 1990년 기아그룹 회장으로 등극, 당시 재계 10위권의 대그룹으로 변모시킨 샐러리맨의 신화였다. 하지만 98년 기아 부도 이후 분식회계 혐의로 4년형을 선고 받아 2년을 복역한 뒤 지난 2000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나는 비운을 겪었다.

그룹의 주축이었던 기아차는 1998년 국제 공개입찰 방식에 따라 진행된 3차례의 입찰을 통해 같은 해 현대차에 낙찰됐다. 기아그룹의 해체의 시작이었다.

김 회장은 현재 서울 미아리 인근 북한산 자락의 32평형 아파트에서 칩거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의 명의로 된 모든 재산은 가압류되어 있는 상태로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도 그의 차남 명의로 돼있다.

지인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해 평화자동차에서 퇴임하기전까지 북한과의 사업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지난해 5월 작고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거나 10월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병문안을 다니는 등 대외적인 행보도 잦았으나 최근에는 지인은 물론 대외활동을 일체 하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은 단지 교회장로 활동과 독서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1년전 만해도 대북사업의 전도사로 불렸던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지난해 10월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과의 갈등으로 퇴임하기 전까지 만해도 대북한 창구의 가장 핫라인으로 평가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11월 등기이사에서도 해임되어 사실상 퇴출되면서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1년이 채 안된 요즘, 김 부회장은 민주평통 서울지역 부의장직을 맡아 재기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에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 리종혁 부위원장과 IOC위원인 장웅 체육지도위원장 등을 만나기도 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려로 벤츠 의전차량이 제공됐고, 리종혁 부위원장이 순앙공항 마중부터 배웅까지 3박4일 내내 김 부회장과 일정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정은 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현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개성의 골프장 사업이 생소한 부동산 개발업체인 유니콘 종합개발로 넘어가면서 북한이 김윤규 카드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활발한 행보로 일부에선 “대북사업을 재개하는 것이 아니냐, 현대아산이 기껏 닦은 대북사업창구가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 등의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김 부회장의 맡고 있는 서울 평통부의장은 25개 서울협의회 회장 모임을 주관하며 협의회 역할과 향후 활동방안을 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이다. 김 부회장은 올 상반기 만해도 25개 협의회가 개최하는 총 10여 차례의 강좌 가운데 반 수 이상을 직접 참석 강의하면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지인에 따르면, 김 부회장이 대북사업에 직접 나설지에 대해 아직 언급을 회피하고 있으나 조만간 어떤식으로든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반면 현대건설 사장 재임 시절 1조원 대 분식 회계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던 김 부회장이 지난 9월 7일 재판부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운신의 폭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

서울 시청 광장 옆에 위치한 A빌딩 12층 사무실에 가면 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을 만날 수 있다. 김 회장은 지인의 요청으로 자신의 주특기인 관광레저산업분야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 콘도미니엄이란 개념을 처음 도입, 불과 3년만에 기업 23개를 거느리는 `신화’를 창조한 인물이다.

세계적 관광타운 건설을 꿈꾸어 왔던 김 회장은 1980년대 초부터 설악권 종합관광휴양지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981년에 1008실 규모의 콘도 건립을 시작으로 레저타운 57만평에 호텔 수영장 골프장 인공호수 등 관광타운을 건설하는 초대형 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명성의 설악레저타운 건설은 속초지역 개발은 물론 강원도 관광지도를 바꾸는 야심찬 사업이었다.

그러나 1983년 명성그룹사건이 터지면서 그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명성사건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던 김 회장이 불법으로 1000여억원 규모의 사채를 끌어들이다 탈세 및 업무상 횡령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다. 기업도 도산하면서 그는 9년 7개월간 영어(囹圄)의 몸이 되면서 재계에서 사라졌다.

1993년 3월 가석방으로 사회로 돌아온 김 회장은 절치부심 끝에 태백산 폐광지역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2000년 11월 폐광지역 개발을 미끼로 20여억원을 사취한 사기혐의로 또다시 불구속 기소되면서 재기의 꿈을 접어야 했다.

최근 서울에 사무소를 내고 강원도 지역의 관광산업을 재차 추진하며 다시 부활의 날개 짓을 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쌍용그룹의 본산이자 고 김성곤 창업주의 생가 터가 위치한 광화문 성곡 미술관 3층에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살고 있다.

김 회장이 미술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까지 세세한 우여곡절은 알려지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김 회장이 관람객들과 함께 미술관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색을 즐긴다는 것이다. 얼핏 사업의 꿈은 접은 듯 보이지만 최근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추진했던 것으로 보면 미술관과 연관된 문화 사업를 펼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 가운데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의 막내 동생인 김석동 회장은 최근 기업인으로서보다 브라운대학-조지타운대학-프랑스 인세드경영대학원의 학맥과 관련하여 자주 등장한다.

신세계그룹 2세인 정용진 부사장, SK그룹 차남인 최재원 SK E&S 부회장, 효성그룹3남인 조현상 상무, 경방그룹 장남인 김준 부사장과 브라운대 동문이다.

이런 학맥을 활용하여 투자금을 모은 그는 몇 년전 잇츠티비(옛 제니시스멀티미디어), 모션헤즈(영화직물) 등에 손을 대면서 당시로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던 A&D를 통한 재기를 꿈꿨다.

김 회장은 사양길에 접어든 섬유직물업체인 영화직물의 지분 50%를 구매한다. 이어 A&D작업에 들어가 엔터테인먼트 지주회사인 모션헤즈로 변신을 시킨다.

사양업체가 하루아침에 앞길이 창창한 회사로 변신하면서 주가도 4000원에서 4만원으로 10배가 뛰게 된다. 이때 마련된 현금과 엄청나게 올라간 주가를 가지고 유상증자를 실시한 김씨는 10여개의 비상장 연예관련기업(연예기획사, 영화사, 음반사 등)들에 지분을 참여하여 인수하게 된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경쟁력을 보유하지 못했던 모션헤즈는 적자에 허덕이면서 7개월만에 김씨는 도중하차하게 된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IT관련 또 다른 사업을 구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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