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22년 전인 1992년 중국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다른 기업처럼 중국의 심장부인 상하이나 베이징으로 곧장 들어가진 않았다. 대신 선양에서 사업을 시작키로 하고 이곳에 공장을 설립했다. 여러번 상하이로 진출하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충분히 노력하자”고 임직원들을 독려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정확히 8년 후인 2000년 서회장은 고군분투 끝에 동북아의 국제도시 상하이에 ‘아모레퍼시픽 차이나’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중국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 후로 2년 이 지난 뒤 서회장은 상하이 공장을 준공했고, 주력 라네즈를 중국 백화점에 입점시키며 중국 프리미엄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그후로 2007년까지도 적자는 계속됐다.
서 회장은 실망하지 않았다. 사업 초기 부터 본격적인 사업보다는 시장의 이해를 위해 다년간의 학습과 중국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 힘을 쏟는 데 집중했다.
상하이 공장 준공 후 다시 12년이 지난 현재,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상반기 중국에서만 219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5%나 성장했고, 올 한해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전체 매출의 10% 비중을 차지하는 4500억원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올해 연간 해외매출이 7000억원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런 추세라면 글로벌 매출 중 70% 가량을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셈이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2020년 원대한 기업(Great Global Brand Company)으로 도약하기 위한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띄운 것. 전체 매출의 28%를 차지하는 3조원 이상의 매출 달성이 그것이다.
‘상하이 뷰티사업장’은 서 회장의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그는 지난 23일 상하이 사업장 준공을 기념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하이 뷰티사업장은 또 하나의 글로벌 사업장 준공을 넘어서 2020년 ‘원대한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한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아시안 뷰티(Asian beauty)’가 세계 뷰티 시장을 지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준공된 상하이 뷰티사업장은 일단 규모 면에서 기존 상하이 공장보다 10배 넘게 커졌다. 12년 만에 생산량과 생산 개수 및 연면적 모두 10배 이상 확대시킨 것이다. 연간 1만3000톤, 본품 기준 1억개의 생산 능력을 갖췄다. 다품종 소량 생산에 적합한 셀(cell) 생산 방식과 중국시장의 급속한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대량생산 방식 등을 모두 고려해 구축됐다.
서 회장의 자랑거리인 경기도 오산 뷰티사업장과도 무척 닮았다. 연간 1만5000톤을 제조하는 오산 사업장에 비해 규모만 조금 작을 뿐, 연구소와 생산, 물류를 담당하는 시스템 일체를 그대로 옮겨놨다. 3000여개의 화장품 브랜드가 있는 중국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연구개발과 인재발굴, 물류, 브랜드 가치 재고 등을 위해 내린 결정이다.
서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로서의 아모레퍼시픽을 강조했다. 그동안 전 세계를 서구의 미가 지배해왔다면 향후 십수년안에 아시안 뷰티가 전세계를 점령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모레퍼시픽은 5대 글로벌 챔피언 브랜드(설화수 라네스 마몽드 이니스프리 에뛰드)를 중심으로 2020년 글로벌 '톱7'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며 “아시안 뷰티라는 ‘미의 차별화’를 통해 중국 뷰티 시장에서 남다른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세계 무대에서 원대한 기업으로 성장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