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고작해야 스무 번

입력 2014-10-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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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함혜란

할머니가 계신 곳에 이틀을 머물며 지난 명절을 보냈다. 여태껏 학생으로 사는 면목 없는 손녀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사뒀던 고기를 굽고 손수 만든 된장으로 국을 끓여낸다.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 앞에서 나는 부끄럽다.

이 마음 앞에서 도리를 다하는 일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내가 달려간 거리만큼이나 멀고 아득하다. 조금만 서 있어도 비틀거리는 얇은 무릎으로 열댓 개가 넘는 찬을 차리는 할머니의 투박한 손 앞에서 나는 왜 이리도 작아지는가.

입안 가득 밥을 밀어넣고 “다음에 또 올게요”하며 문 밀고 나가는 나를 불러 세우고 그녀가 내게 쥐여준 돈은 10만원이었다. 나는 왜 아직도 이 노인에게 명절에 10만원조차 쥐여주지 못하는 철부지 손녀인가.

죄책감이라기에는 가볍고, 감사하다 하기에는 면목없는 10만원이 지갑 안에 있다. 할머니가 그리 좋아하는 책 읽는 손녀는 그녀의 닳고 닳은 무릎이 만들어낸 10만원으로 공부할 책도 사면서 한동안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또 눈길만 줬던 구두도 사고, 한 잔에 만원 반 돈이나 하는 커피도 사 마실 것이다.

내가 그리운지 할머니는 종종 나에 대한 꿈을 꾼다. 꿈이 길몽이면 전화를 받을 때까지 몇 번이고 걸어 내게 조만간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한다.

꿈과 나의 장래가 무슨 개연성이 있겠느냐마는 그녀의 오랜 습관은 내가 그리 나쁘지 않은 존재라고 믿게 한다. 나는 그 정성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을 믿는다.

일 년이면 두어 번 정도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그녀에게 기대할 수 있는 남은 날들이 10년이라고 한다면 나는 앞으로 고작해야 20번 더 그녀의 된장국을 먹을 수 있는 것이리라.

4번의 계절을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들던 시절, 일 년에 2번이 아니라 일 년이 온통 그녀이던 시절, 내게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있다면 그 계절들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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