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금융인 릴레이 인터뷰<3>]“120% 일해야 동일한 평가… 워킹맘, 여전히 희생 필요”

입력 2014-10-29 10:22 수정 2015-06-1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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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림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

1981년 서울 영동여고 3학년 학생이 국어 고문(古文) 과목 시험을 백지로 냈다. 당연히 성적은 0점이었다.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들에게 틀린 문제 개수만큼 발바닥을 때리는 게 싫었던 학생의 발칙한 반항이었다. 내신성적도 대학시험에서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학생은 나름대로 단단히 마음 먹고 교사에게 대든 셈이다. 학생은 그럼에도 서울대 경영학과를 들어갔다.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본부 박정림 부행장의 학창시절 이야기다. 당시 고문을 가르치던 교사는 부당한 것을 참지 못한 의리파 학생의 일화를 후배들에게 전하며 ‘그래도 좋으니 공부는 열심히 하라’고 가르친다. 박 부행장은 “물론 잘되라고 때리셨지만, 감정이 과한 것이 보여 왠지 모를 반항심이 생겼다. 어린 마음에 반항할 수 있는 게 그런 것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진=노진환 기자)

◇ 여성 임원 불모지 개척 = 남성 중심 사회인 금융권에서 박 부행장이 임원이 될 수 있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어릴 적 그가 보여준 당찬 모습은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든든한 무기였다. 그가 1986년 체이스맨해튼은행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여성들이 은행의 다양한 경력을 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박 부행장은 “여자들은 아무래도 남자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그러다 보니 경력관리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지금은 박 부행장이 금융권에 들어올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는 “요새 신입행원 성비는 반반이다. 경력관리 측면에서도 여자가 남자보다 불리하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엔 승진에 남여 차별은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중간간부의 여성들이 남성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가 적지 않았나 싶지만, 그래도 여타 제조업보다 여성들이 일하는 데 어려움이 덜하다. 여자가 일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열정을 불태운 재무보고통제부 시절 = 흔치 않은 여성 임원이 되기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에 대해 묻자, 그는 잠시 주저하다 재무보고통제부 시절을 꼽았다. 재무보고통제부는 모든 경영행위가 정확하게 수치화되고, 그 숫자를 다시 경영행위로 풀어가는 과정을 통제하는 일을 한다. 0.01%의 연체율과 1조원의 순익이 발생했다고 하면 그 수치의 정확성을 판단하고, 앞으로 그 수치를 낮추거나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점검하는 게 주된 업무다. 박 부행장은 “은행에서 새롭게 추진한 업무였다. 신설부서를 맡아서 직원들과 재미있게 셋업(기반 구축)했다는 게 굉장히 보람됐다”고 전했다.

이어 “상품 부서에서 펀드·방카업무를 맡아서 하면서 국민은행이 다른 은행 대비 좋은 성과를 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며 “PB(Private Banker·개인자산관리)센터에서 자산가들을 관리하는 직원들과 희노애락을 같이했던 것도 좋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여성 임원이 된 것은 선후배, 동료의 힘이 컸다고 했다. 박정림 부행장은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은 직원들이 보이지 않게 열심히 일해 준 덕분이다. 직원들이 만들어 준 자리”라고 말했다.

◇ 영원한 숙제는 역시 ‘육아’ = 주위에서 그를 강한 여성으로 평가하지만 그에게도 직장생활 내내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박 부행장은 “가슴 철렁하게 만드는 건 역시 아이 교육 문제다. 직장생활을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많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일하는 중에도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불안할 때가 많았다. 그는 “아이 학교에서 온 전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은 적이 없다. 준비물 못 챙기고 숙제도 안 챙겨주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좋은 학원에 보내려고 했더니 ‘엄마가 직장을 다녀 너무 신경안 쓰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어 속이 많이 상했다”고 했다.

직장에서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인정받으려면 120% 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박 부행장은 “나뿐 아니라 모든 여성이 120% 일해야 동일하게 평가받는다. 여전히 여러 희생이 필요하다. 밥 먹는 자리조차도 남자가 빠지면 말이 안 나오지만 여자가 빠지면 얘기가 많이 나온다. 오랫동안 밥을 먹고 술을 마셔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힘든 시절 마음의 동요는 있지만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워킹맘이 갖는 콤플렉스를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정림 부행장 누구인가

△1963년 11월 서울생 △1986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86년 체이스맨해튼은행 입사 △1992년 국회 정몽준의원 비서관 △1994년 조흥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 △1996년 조흥은행 종합기획부 리스크관실 과장 △1999년 삼성화재 자산리스크관리부장 △2004년 국민은행 시장운영리스크부장 △2005년 국민은행 재무보고통제부장 △2008년 국민은행 제휴상품부장 △2012년 국민은행 웰스매니지먼트 본부장 △현재 국민은행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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