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장은 공모 지원서에 “친박그룹의 일원으로 의정 활동 4년 내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며 “오랜 개인적 인연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 됐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에 내야 할 공천 신청서를 코바코에 실수로 잘못 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당한 사장 공모 지원서다. 그런데도 그는 사장에 선임됐다. 염치는 없어도 친박이라는 이름의 마패만 흔들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코미디언 출신 자니 윤 한국관광공사 감사의 자기소개서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재외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사실을 강조하며 “대통령님의 국정철학과 관광공사 사장님의 경영방침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 해외투자를 유치하겠다”고 썼다. 사장을 포함한 사내 부정부패를 감시해야 할 감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개념조차 못 잡고 있다.
공모제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1999년 ‘추천제’란 이름으로 처음 도입됐다. 취지는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를 통해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선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낙하산 인사 시비는 오히려 더 늘고 있다. 전문성보다 집권자의 입맛에 맞는 인물, 그것도 미리 내정된 듯한 인사가 선정됐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낙하산 인사에 정당성까지 부여하는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하다는 힐난까지 확산되고 있다. ‘공모제’로 개명한 노무현 정부나 대상 기관을 90여 개로 확대한 이명박 정부는 물론 ‘관피아’ 척결을 외치는 박근혜 정부도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박심’을 품기라도 한 듯 ‘친박 마패’를 내세워 공공기관 입성에 성공한 낙하산 인사가 더 있을 것이다. 야당에 따르면 ‘국감 뺑소니’ 논란을 일으킨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포함해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달까지 132개 공공기관에서 205명의 ‘박피아’가 탄생했다.
그러나 이들 친박 낙하산 인사만 탓할 일이 아니다. 당장 후보를 추천하는 임원추천위가 정상적으로 작동됐다면 서류심사에서 애당초 컷오프돼 실패한 낙하산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시험 응시자는 누구나 정답을 찾기 마련이다. 합격한 것을 보면 이들은 출제자인 임명권자가 원하는 정답인 친박을 정확히 맞힌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박 대통령은 힌트를 줬다. 지난해 3월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한다”는 당선인 시절 입장을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쪽으로 선회했다.
임원추천위도 억울하다. 사실상 임명권자가 자질 및 점수와 무관하게 아무나 채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보를 3~5배로 추천하는 데다 추천 기준이나 선정 과정을 공개할 의무도 없어 ‘위’에서 점찍은 인사가 추천 후보에만 들어가면 사실상 기관장에 임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백기승 전 청와대 국정홍보 비서관은 한국인터넷진흥원 서류심사에서 5등을 하고도 원장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공모제 추천 후보를 2배 이하로 줄이고 추천 시 정한 후보자 순위를 공개해 순위가 뒤바뀔 때는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말까지 새 공공기관 고위직이 쏟아질 전망이다. 인사가 늦어지면서 업무 공백은 물론 문고리 권력 인사계획설, 비선라인설, 실세 간 알력설 등 각종 괴소문까지 난무하기 때문이다. 장기 공석이거나 후임 인사 지체로 전임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까지 포함하면 기관장이 공석인 기관만 지난 9월 말 기준 45곳에 이른다.
국민도 낙하산 인사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다고 자질과 전문성을 도외시한 채 불량 친박 기관장을 남발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인사 실패는 국정 실패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망사(亡事)가 되어버린 인사를 만사(萬事)로 정상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