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모뉴엘과 기술금융, 구멍난 무역금융

입력 2014-11-04 10:35 수정 2014-11-0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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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헌 부국장 겸 금융시장부장

빌 게이츠의 기업 보는 눈이 부족한 것일까.

“이 기업을 주목하라” 며 극찬한 중견가전업체 모뉴엘이 법정관리를 신청해 논란이 되고 있다.

수출입은행으로부터 히든챔피언으로 선정될 정도로 유망기업으로 평가받던 기업의 갑작스런 법정관리에 금융권이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6년간 수출 단가를 뻥튀기한 허위 매출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했지만, 해당 기관인 관세청도, 대출해준 은행들도 전혀 낌새를 채지 못했다. 또 4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해외에 자금을 빼돌려도 국세청, 금융당국은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속속 드러나는 모뉴엘의 실체는 과히 충격적이다. 수출입가격 조작, 비자금 조성, 자금세탁, 해외 재산도피, 도박 등 비리 백화점 수준이다.

이번 모뉴엘 사태를 보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애플, 페이스북, 알리바바와 같은 글로벌 기업을 꿈꾸며 밤낮없이 땀 흘리는 우수 중소기업에 선의의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9월 이투데이가 주최한 중소·벤처기업 금융지원 박람회를 진행하면서 우리 주변에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박람회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중소기업에 기술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고, 부실 위험이 큰 중소기업에 금융 지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금융권의 목소리를 많이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들의 시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중소·벤처기업 박람회를 진행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소기업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 잡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정부와 금융권의 지원만 있다면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갈 수 있는 중소기업들이 많지만 겉도는 정부정책과 금융권의 경직된 시각이 우수 중소기업을 고사(枯死)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번 박람회를 진행하면서 수출입은행,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정책금융기관들이 중소기업 지원에 얼마나 경직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정책금융기관은 은행의 문턱을 넘지 못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금융 지원이 본연의 역할이지만 그들은 획일화된 기준으로 ‘된다, 안 된다’며 갑(甲)질만 할 뿐,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지원 해법을 고민하는 모습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본연의 역할을 못 한다면 존립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중소기업 육성 정책은 역대 정부에서도 빠지지 않은 단골 정책이었다. 박근혜 정부도 창조경제, 기술금융 브랜드로 역대 어느 정부보다 중소기업 육성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 보니, 일각에서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꼴 날 것이라는 부정적 목소리도 들린다.

모뉴엘 사태의 본질은 부도덕한 CEO와 허술한 무역금융시스템에 있다. 중소기업을 지원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단종된 홈시어터PC를 250만원에 판매한다고 허위로 수출입 신고를 해도 확인없이 도장만 찍어준 관세청, 모뉴엘 직원과 공모해 보증한도를 늘려준 무역보험공사 직원, 보증받은 채권이니 부실이 나도 손해날 것 없다며 대출해준 은행의 여신심사 시스템이 모뉴엘 사기대출을 가능케 했다.

한국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져 있다. 내수경기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대외 여건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실적 부진으로 경고등이 들어와 있고 가계부채는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몇몇 대기업에 목 매는 산업구조로는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다. 대기업은 글로벌시장 공략을 선도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지원하는 상호 지원시스템이 구축될 때 한국경제의 체력은 튼튼해질 수 있다.

부디 이번 모뉴엘 사태가 애먼 중소기업만 잡지 말고 구멍난 무역금융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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