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0대 여성 존엄사, 한국에서 일어났다면...'김할머니ㆍ보라매병원 사건' 재조명

입력 2014-11-04 16:01 수정 2014-11-0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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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20대 여성 존엄사,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뇌종양을 선고받고 고통스러운 삶을 선택하는 대신 존엄사를 택하겠다고 말한 미국 여성 브리트니 메이나드(29)가 지난 1일(현지시간)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3일 미국 CNN방송이 보도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존엄사를 예고했던 미국의 20대 여성이 지난 1일(현지시간) 자신이 예고한 대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온라인에서 '스스로 죽을 권리'와 '생명의 존엄성' '안락사' 등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 같은 사례가 발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궁금증이 제기됐다.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한 주인공 브리트니 메이나드(29)의 존엄사는 그녀가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젊은 여성이었다는 점, 스스로 존엄사를 선택한 이유와 시간을 예고했다는 점 등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메이나드가 선택한 존엄사는 환자가 직접 약물을 복용해 사망하는 것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을 투입하는 안락사와는 다른 개념이다.

존엄사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최선의 의학적 치료를 다했음에도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질병에 의한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안락사는 질병에 의한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 행위에 의한 죽음이다. 안락사 중에서도 환자의 요청에 따라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에게 약제 등을 투입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것을 '적극적 안락사',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이나 약물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소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와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다.

국내에 안락사나 존엄사를 인정하는 법은 없다. 안락사와 존엄사를 둘러싸고는 잘 알려진 2가지 사례가 있다.

우선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1997년 12월 4일, 보라매병원 응급실로 58세의 남자가 119 구급차에 실려 왔다. 이에 의료진은 긴급하게 수술을 했지만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하고 환자의 의식도 회복되지 않아 회복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다음 날 오후 환자 부인이 경제적 이유로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다며 퇴원을 요구했다. 담당 전공의와 전문의는 환자의 상황을 들어 퇴원을 만류했으나 부인은 막무가내로 퇴원을 요구했다. 결국 담당 전문의는 담당 전공의에게 환자의 상황을 보호자에게 재차 주지시킨 후 귀가서약서에 서명을 받도록 지시, 이에 따라 12월 6일에 전공의는 환자를 퇴원시켰다. 그러나 퇴원 당시 간이형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스스로 호흡을 하고 있던 환자는 환자 가족의 요청에 의해 이를 제거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환자의 부인을 살인 혐의로 구속하고 담당 의사 3명을 살인죄의 공범으로 기소했다. 법원은 부인에 대하여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정범(범죄를 실제로 저지른 사람)을 인정했고, 관련 의사 2명에 대하여 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방조범을 인정했으며, 1명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했다. 법원은 치료를 계속 했더라면 환자가 살 수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할머니 사건'도 있다. 김○○ 할머니는 2008년 2월 18일 폐암 여부를 확인하러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인한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병원 측에 요청했으나 병원 측은 이를 거부했고, 이에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을 거쳐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은 이른바 '존엄사'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렸다. 어차피 병원 측도 존엄사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며 비슷한 사례가 빈발할 것이 예측되므로, 매번 법원의 판단을 물을 것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과 의료진이 자체적으로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법원이 환자와 가족이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한 첫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이에 따라 2009년 6월 23일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으나 할머니는 스스로 호흡을 하며 생존했고, 201일 만인 2010년 1월 10일 사망했다. 의식불명 후 692일 만이었다.

'보라매병원 사건'과 '김할머니 사건'은 결론은 다르지만 취지는 유사하다는 평가다. 치료를 해도 살 가능성이 없는 경우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다만 환자 본인의 의사가 추정되어야 하며, 정말 생존 가능성이 없는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등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존엄사가 일반적으로 인정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존엄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아주 세밀한 기준을 마련하여 이것이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브리트니 메이나드의 존엄사 사건이 국내에서 일어났을 경우, 그의 가족은 자살 방조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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