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렷!” “경례!” “시작!” 태권도 사범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의 겨루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도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어딘지 어설퍼 보인다. 여기는 한국 태권도장이 아니다. 한국인 사범으로부터 태권도를 배우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다. 도장이 없어 맨땅에서 맨발로 태권도를 배워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이 난다.
스포츠 한류의 시발점은 태권도 사범의 해외 파견이었다. 1960년대 국군의 의료진과 태권도 교관단이 베트남에 파견되면서 시작된 태권도 사범의 해외 파견은 태권도뿐 아니라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는 문화사절단 역할을 했다. 지금은 200여 개국에서 80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다.
국기원과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도 아시아 5개국(동티모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타지키스탄·태국)과 아프리카 4개국(레소토·알제리·우간다·케냐), 남미 2개국(콜롬비아·파나마), 유럽 1개국(벨라루스)에 태권도 사범을 파견한다. 국기원은 지난 2009년부터 문화부와 함께 태권도 사범을 해외에 파견, 태권도와 한국 문화를 보급하는 사업을 벌여 왔다.
세계로 파견된 한국 태권도 지도자들의 인기는 스포츠 스타 못지않다. 한국 유학생 올즈하스 비스베예브(28세·카자흐스탄)는 “한국은 기술뿐 아니라 지도 노하우와 리더십도 뛰어나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겐 없는 많은 것을 지니고 있어 인기”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스포츠 빅 이벤트에서의 성적이 빛났다. 특히 유도는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64년 도쿄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금메달 11개·은메달 14개·동메달 15개로 총 40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쇼트트랙(금19·은11·동7)과 양궁(금19·은9·동6)에 이어 세 번째에 해당하는 메달 순위다.
40개의 메달을 획득하는 동안 레전드급 스타도 속속 배출됐다. 안병근·하형주(이상 1984 LA올림픽)·김재엽(1988 서울울림픽) 등이다. 이들은 올림픽 금메달을 통해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렸고, 한국은 일본과 함께 유도 강국으로 1980년대를 호령했다.
국기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다. 1988년 서울올림픽 시범종목을 시작으로 1992년 바르셀로나와 1996년 애틀랜타까지 올림픽 3회 연속 시범종목을 유지하다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정식종목에 포함됐다. 스포츠 외교의 승리였다.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2012년 런던 대회까지 12년간 4개 대회를 거치면서 금메달 10개·은메달 2개·동메달 2개를 획득하며 유도와 함께 효자 종목으로 군림해 왔다. 결국 유도와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합작한 메달 수는 총 54개다. 스포츠 한류의 시발점이 무도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국내 기업과 단체의 해외 원조도 스포츠 한류 확산에 일조했다. 베트남에 6개 계열사를 둔 CJ는 지난 2012·2013년 베트남 태권도 대표팀을 후원했다. CJ는 베트남 현지에 전자호구 등 장비일체와 훈련비용, 한국 전지훈련 체재비용 일체를 지원하는 등 양국 간 문화교류의 가교 역할을 수행, 태권도를 한류 콘텐츠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총재 김기웅)도 개도국에 평화봉사단원을 파견, 도복과 물품 지원을 통해 전 세계 태권도 붐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