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최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련의 걱정스러운 사건들이 있었으나 그 절차를 다시 밟을 만큼 증거가 충분하지는 않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윤리위원회 심판관실이 발표한 2018년,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의혹 조사 결과이다. 그러나 이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을 축구팬은 많지 않을 듯싶다. 당장 비리를 조사한 실무자가 “불완전하고 오류투성이”라며 발표된 조사결과에 크게 반발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비리 의혹이 은폐된다면 최후의 수단을 쓰겠다”며 FIFA 탈퇴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번 개최지 선정을 둘러싼 비리 의혹을 조사한 마이클 가르시아 FIFA 윤리위원회 수석 조사관은 지난 9월 430쪽 분량의 조사 보고서를 FIFA 윤리위에 제출했다. 그러나 윤리위 심판관실은 이 보고서를 42쪽으로 압축해 발표했다.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을 비롯한 FIFA 수뇌부가 전면 공개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FIFA는 월드컵 개최지 선정 비리 의혹의 당사자이다. 하지만 조사기관이 FIFA의 영향력 안에 있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기 만무하다.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FIFA는 곳곳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은 채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한국 체육계도 FIFA처럼 병폐를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월 한국 체육계의 비정상적 관행의 정상화를 목표로 스포츠공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승부조작 및 편파판정, 선수 (성)폭력, 체육계 학교 입시비리, 체육 단체 등의 조직 사유화를 스포츠 4대 악으로 규정하고 신고센터를 통해 제보를 받아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10개월간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다. 고교야구 주말리그에선 승부조작 의혹이 불거졌고(7월 7일 제주고-포철고 경기), 농구장에선 감독이 심판을 머리로 들이받았다(7월 10일 아시아대학농구 정재근 연세대 감독). 또 쇼트트랙에선 성추행 사건이 터졌고 축구계에선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 이후 학연으로 묶인 ‘의리 축구’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 기간 스포츠공정위원회는 깜깜 무소식이었다.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공정성 관리 총괄 기구로서의 활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FIFA의 내분사태는 자정 기능이 한국 체육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필수 요소임을 말해주고 있다.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지금과 같아선 안 되는 이유다. 일회성 처벌이 아닌 상시적인 개혁이 이뤄지기 위해 간담회, 정책 연구용역, 공개세미나 등이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민간위원 위주의 인력 구성의 재편도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