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칠칠맞은 여자, 칠칠한 남자가 되자

입력 2014-11-2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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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기자

발갛게 타오른 늦가을 오후 동료 몇몇이 단풍잎을 닮은 낯빛으로 인사를 건넨다. 낮술의 단내가 살짝 풍겨난다. 한두 잔의 낮술은 맛도 맛이지만 금지선을 넘는 짜릿함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일상과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볼 수도 있다. 시간에 걸터앉은 계절이 보이고, 무심히 쏟아지는 햇살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가볍게 마셨으니 이들의 오후 근무엔 탄력이 붙을 것이다.

기자 사회에서 ‘낮술’ 문화는 일종의 전통 같은 것이다. 수백년 전 왕조(王朝) 시절 지금의 언론 기능을 했던 언관(言官)제도에서 낮술의 특혜(?)를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언관은 민간의 풍속과 신하의 잘못은 물론 임금의 실정, 잘못된 인사 등 허물을 비판해 바로잡아야 했던 참으로 고달픈 직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관은 업무시간 중 낮술에 취해 있어도 허용이 됐다.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다. 왕에게 곧은 소리를 하다 언제든 옥에 갇히거나 귀양을 갈 수도 있는 자리인 만큼 일종의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특혜를 준 셈이다. 오늘날 언론도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성향이 다른 세력의 온라인상 댓글 공격이 어마어마하다. 비판 수위가 높은 기사 혹은 칼럼이 게재되면 거친 네티즌들로부터 수난을 당하기 일쑤다. 권력으로부터 소송 등의 방식으로 반격을 받기도 한다.

물론 낮술 예찬론자는 아니다. 낮술로 인해 ‘흑역사’를 쓴 사람도 부지기수다. 교육전문지 이모 부장은 성품이 온화하고 업무 실력 또한 뛰어나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우는 통에 ‘술꼭지’란 별명을 얻었다. 어느 날 그는 술을 끊었고 지금은 칠칠한 사람으로 거듭났다. 며칠 전 모임에서 만난 이 부장에게 “당신, 참 칠칠맞은 사람이야”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 순간 분위기가 냉랭해졌고 모든 시선이 내게 꽂혔다. 스마트폰을 통해 포털사이트에 접속한 후 국어사전에서 ‘칠칠하다’의 뜻을 보여 준 다음에야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다.

‘칠칠하다’, ‘칠칠맞다’(칠칠하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는 들어서 좋은 말이다. ‘주접이 들지 않고 깨끗하고 단정하다’, ‘성질이나 일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란 뜻으로 긍정적 의미의 표현이다. 따라서 “칠칠맞은 사람”은 “반듯하고 야무지게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란 의미의 칭찬이다. 그런데 이 말이 주로 ‘못하다,않다’와 함께 쓰이면서 많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칠칠하지(맞지) 못하다’는 ‘단정치 못하고 주접스럽다’는 뜻으로 누군가의 잘못을 야단치거나 빈정거릴 때 적합하다. “칠칠맞지 못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 남자는 늘 칠칠치 못한 모습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다” 등으로 쓰인다. 그러므로 누군가로부터 ‘칠칠맞다’는 얘기를 들으면 민망해하거나 화를 내지 말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야 한다.

부정적 의미의 표현으로 반드시 ‘못하다, 않다’를 붙여야 온전한 말도 있다. 바로 ‘안절부절못하다’이다. 우리말에 ‘안절부절하다’라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 어찌할 바를 모르다’란 의미는 ‘안절부절못하다’라고 해야 한다. 이 자체가 한 단어이므로 띄어 쓰면 안 된다. ‘전혀 합당하지 않다, 전혀 관계가 없다’라는 뜻의 ‘얼토당토않다’도 항상 부정어 ‘않다’가 붙어서 한 단어로 쓰이는 말이다. 이 역시 반드시 붙여 써야 한다.

주신(酒神) 바커스가 군신(軍神) 마르스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영국 속담이 있다. 폭음에 대한 경고다. 모임이 많아지는 요즘 술이 백약지장(百藥之長)이 될 수 있도록 잘 조절해 마시자. 그래야 칠칠맞은 남자, 칠칠한 여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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