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회색 구두와 아버지

입력 2014-11-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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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진 크루셜텍 전략기획그룹 대리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나는 고향에 내려갈 때면 한껏 신경을 쓴다. 혹여 도시에 나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밥은 잘 챙겨먹는지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잘 있노라 확인시켜 드리려는 것이다.

그날도 잘 차려 입고 고향에 내려가는 길이었다. 우연히 구두 한 켤레가 눈에 띄었다. 작은 가게 한 켠에 차분히 자리를 잡고, 수줍게 말아올린 꽃 장식과 탁한 회색이 매력적인 구두는 내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새 구두와 함께 고향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거실에서 TV를 보며 유유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반투명 미닫이 문 너머 현관에 쭈그려 앉아 계신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무엇인가 열심히 닦고 계셨다. 문을 열고 보니 아버지께서는 내 구두를 닦고 계셨다.

“네 구두가 더러워서 닦아 놓을라고. 회사 댕기는 사람 구두가 더러우면 쓰겄냐. 깨끗하게 하고 댕겨야지”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와 함께 까만 구두약을 얇게 펴 바르며 열심히 광을 내고 계신 아버지는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하고 계셨다.

원래 탁한 회색의 반짝임이 없는 구두였지만 아버지께서는 더러워졌다고 생각하셨던가 보다. 회색구두는 점점 검정색이 되었고,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

비록 원래 구두의 느낌은 사라지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검정색 구두를 받아 들며 환한 미소와 함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감정 표현이 서툰 아버지께서 홀로 타지에 나가 고생하는 딸이 안쓰러운 마음에 뭐든 해주고 싶으셨으리라. 아버지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금도 나는 그 구두를 즐겨 신는다. 너무 까맣고, 부담스러운 반짝임이 있지만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때론 자식을 위해서 더럽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그런 존재 말이다.

부모님이라는 석자만으로도 가슴 뭉클해지는 이 겨울 부모님께 전화 한 통화 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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