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이 선진화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은행의 주인 찾아주기’가 급선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KB금융 내분 사태를 겪으면서 금융산업의 지배구조 개편이 화두로 급부상했다. KB금융 사태는 금융지주사가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단적인 사례다.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 80위, 금융 건전성은 122위에 불과해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동남아 국가들보다 저평가되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은행 경쟁력을 나타내는 ROA(총자산이익률)가 인도네시아(2.75%), 말레이시아(1.70%)에도 떨어져 0.38%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때는 동아시아 금융허브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후발주자에게도 밀려 금융권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국내 금융산업이 후진성을 벗지 못 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주인없는 은행’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은행의 주인 역할을 하는 국가들의 금융산업 경쟁력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반면, 민간이 은행의 주인 역할을 하는 국가들의 경우 금융산업이 선진화돼 있다는 것이다.
KB사태 역시 근본적으로는 주인이 없는 금융지주 체제에서 지주 회장과 행장 간의 파워게임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민간은행 사라진 국내 금융산업 = 우리나라는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후 대부분의 민간은행들이 사라지고 정부와 정부기관이 대주주로 등장했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의 소유구조는 전형적인 ‘관치금융’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기업법률포럼 대표)는 “과거 민간이 주인이었던 지방은행마저도 예금보험공사나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여서 사실상 민간은행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시중은행 중 신한은행은 신한금융지주의 100% 자회사이며, 신한금융지주의 주요 주주는 국민연금(8.81%), BNP파리바(5.35%)다. 국민은행은 KB금융지주사의 100% 자회사이며 KB금융지주의 최대 주주는 국민연금(9.51%)이고 미국 금융그룹인 BNY 멜론이 2대 주주로 주식 8.06%를 소유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예금보험공사(56.97%), 국민연금(8.21%)이 주요주주다. 하나은행은 하나금융지주가 100% 소유하고 있는데 하나금융지주의 주요 주주는 국민연금(9.51%), 프랭클린 템플턴 펀드(6.98%), 블랙록 펀드(5.08%)다. 외환은행은 하나금융지주가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미국 씨티은행 본사가 97.5%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지방은행 중에서 대구은행을 자회사로 둔 DGB금융지주의 주요 주주는 삼성생명보험(7.25%), 애버딘(8.40%), 인베스코(8.34%), 사우디아라비안 머니터리에이전시(6.41%)이다.
BS금융지주는 롯데장학재단이 13.12%, 국민연금이 11.44% 보유 중이다. 광주은행은 예금보험공사가 56.97%, 국민연금이 5.46%를 각각 소유하고 있으며 제주은행은 신한금융지주가 68.88%를 보유 중이다.
전북은행을 자회사로 둔 JB금융지주는 삼양바이오 팜이 11.7%, 국민연금이 6.06%, 한국투자신탁운용이 5.89%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경남은행은 BS금융지주가 56.97%를 소유해 최대주주이며 국민연금이 6.27%를 보유하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금융감독은 강화하되, 소유구조를 개편해 ‘주인 있는 금융회사’로 만들 필요가 있으며 안정적인 금융사 지배구조를 확립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삼현 교수는 “은행법상의 동일인 주식소유 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대기업 구분없이 10%로 상향 조정하고, 금융 전문성을 확보한 금융그룹에 대해서는 20%까지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금산분리 완화 ‘뜨거운 감자’ =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금융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배경에는 금산분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금산분리의 원칙 하에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주식보유를 엄격하게 제한했다. 따라서 금융지주회사의 대주주는 정부와 정부기관이 되고, ‘관치금융’의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의 금산분리 원칙은 은행은 물론, 보험회사를 비롯한 모든 금융기관에게 엄격히 적용된다. 현재 은행법은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4% 이상 가질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의 경제력 집중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여전히 금산분리 원칙이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는 의견과 다른 한편에서는 금산분리 원칙이 글로벌 경쟁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금융제도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은행의 소유구조를 통해 은행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자유롭게 주식을 소유하는 것을 인정하되, 경영이 건전하게 이뤄지도록 간접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금산분리 논쟁은 인터넷 전문은행으로 인해 재점화됐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4일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중장기 과제로 고민해 보겠다”며 “다만 그전에 은행에 대해 산업자본을 허용할 것인지, 그에 대한 소유 제한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당국은 이미 내부적으로 인터넷뱅크 시대에 대비한 금산분리 모형을 검토해왔으며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방안을 마련하면서 금산분리 문제도 포함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금융위원회는 산업자본에 대해서는 여신(대출) 기능을 뺀 인터넷은행을 허용하는 방안과 은행 자회사형 인터넷은행 소유부터 제한적으로 허용한 뒤 소유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