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펀드로부터 M&A 공격을 받았지만 보유중인 자사주를 백기사에게 처분하는 것이 금지돼 경영권을 방어할 길이 없다”, “부실한 사업부를 제3자에게 매각해도 괜찮은지 불안하다. 나중에 그 사업이 잘되면 회사기회를 유용했다는 소송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목소리는 정부가 마련한 상법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기업활동 기상도에 이같은 악천후가 닥칠 것을 우려하는 재계의 불만사항이다.
이에 따라 재계는 공통적으로 M&A 방어, 소송, 주주총회 등 기업경영의 3대 불안감을 심화시킬 수 있는 관련규정의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4일 ‘상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건의서를 통해 “당초 기업활동의 자율성이 확대되고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외국에서 일반화된 지원제도는 외면되고, 해외입법례가 없는 규제가 대거 도입돼 경영환경이 더욱 불리해졌다”고 평가했다.
대한상의는 개정안의 내용 중 기업들이 자사주를 처분할 때 신주배정절차를 준용토록 한 것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주배정절차를 따르자면 M&A 공격자에게도 똑같은 비율로 자사주를 배정해 줘야 하는데 이는 그동안 유력한 M&A 방어수단이었던 자사주가 무용지물이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사주 처분시 신주발행절차를 준용토록 한 규정은 일본의 입법례를 본뜬 것이지만 일본의 경우 우리와 달리 신주발행절차에 주주우선배정원칙이 없다. 이 때문에 자사주를 자유롭게 제3자에게 처분할 수 있는 일본기업과 달리 우리 기업들은 일본법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M&A 공격에 속수무책이 되는 제도적 괴리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업들의 M&A 방어에 유리한 신주매수선택권제도가 긍정적인 도입논의에도 불구하고 누락된 반면 M&A 방어에 불리한 자사주 처분절차 관련규제는 충분한 논의 없이 도입됐다”면서 M&A 관련제도 정비방향에 대한 체계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에 주주총회 의사정족수를 부활한 데 대해서도 소액주주들의 참여도가 낮아 주총 자체가 무산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하고 전자투표제 도입시의 시행착오 여부를 지켜본 후에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이번 상법개정안에서 회사기회의 유용금지 등 기업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제도들이 다수 도입된 결과 합리적인 경영판단을 내린 경우에도 사후적으로 실패책임을 추궁당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언제 어떻게 소송을 제기당할지 몰라 경영자들이 자신감을 갖고 회사를 경영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했다.
대한상의는 이번 상법개정내용을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선진국과 비교한 결과 ‘규제는 많고 지원은 적은’ 특징이 두드러졌다고 지적하고 글로벌 스탠다드를 기준으로 상법개정안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는 상법에 기업경영을 통제하는 내용이 도입되면 향후 증권거래법 등의 후속입법과정에서 반영되면서 경영환경에 심각한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앞으로 정부안 확정 및 국회심의과정에서 이같은 문제점을 알리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약도 정상인에게 투여하면 독이 되기 때문에 일부의 부도덕한 행위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선량한 다수에게 고통을 주는 방향으로 상법을 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자리 창출과 투자활성화를 국가경제의 당면과제로 인식해 기업활력을 북돋아주는 방향으로 상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