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의 지금여기]뭐 묻은 금융당국, 겨 묻은 금융회사

입력 2014-12-1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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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 내분 사태의 당사자라는 비판을 받아온 사외이사들이 전원 사퇴했다. 우선 전임 회장과 행장이 주전산기 교체를 놓고 내분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남의 집 불구경하다 제 집을 태워 먹는 우를 범한 그들을 옹호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쫓겨나듯 일괄 사태라는 처사가 관치의 또 다른 잔재로 확인되면서 씁쓸한 뒷 맛을 남긴다. 앞서 이들은 금융위원회가 KB금융의 LIG손해보험 인수거래 승인을 지연시켜며 사퇴를 압박하자 관치금융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금융회사 내부 문제에 금융당국의 간섭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표면적으로 KB금융의 경영관리 능력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경영진의 강력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게 사실이다.

결국 이번 KB금융 사외이사들의 사퇴로 인해 LIG손해보험 인수 승인과 금융당국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동시에 도마에 올라가는 계기가 됐다. 특히 사외이사 전원 교체로 금융당국이 제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첫 시험대에 올랐다.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따라 신규 사외이사들을 선임해야 하는 KB금융은 사외이사들의 권한과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지나치게 교수 중심으로 이뤄진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KB금융 사외이사 신규 선임 결과에 따라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의 성공 가능성이 점쳐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사외이사 인력풀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이 유도한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래서 일까. KB금융 사외이사 전원 교체가 금융당국의 작품이지만, KB금융의 LIG손해보험 인수는 좀처럼 실마리는 찾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사외이사의 전원 사퇴가 LIG손보 인수를 승인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인적 쇄신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회 개편은 LIG손보 인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요건일 뿐 LIG손보 인수 능력 자체에는 여전히 의문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KB금융은 금융감독원의 현장 검사에서 지적된 사항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 같은 KB금융 입장과 맞물려 금융당국이 발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역시 역풍을 맞고 있다. 일단 금융당국은 주주권 침해 논란이 커지자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안의 시행을 연기했다. KB금융 내분사태로 여론에 쫓기다 보니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을 뽑을 때 자격 요건과 후보군 관리, 이사회 추천 등을 담당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설치를 의무화한 조항이다. 또 경영진 선임과 해임안은 이사회를 거치도록 하고, 경영진의 임면을 위한 평가 기준과 절차, 해임 및 퇴임 사유 등도 명문화하도록 규정했다.

결국 오너나 대주주가 원하는 CEO를 앉힐 순 있겠지만, 엄연히 주주가 있는 민간 금융회사를 금융당국이 지배구조에 간섭해 주주 권한을 무력화하고 사외이사들의 권한만 잔뜩 키워놓으려는 모양새다.

KB금융의 내분 사태는 주인 없는 은행에서 사외이사들이 책임은 없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또 주인 없는 금융회사를 만드는 관치금융 역시 지배구조가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주된 원인이다. 법적 근거도 없는 규제에 네 탓 공방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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