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와 함께 무너진 신흥시장, 되살아난 1998년 악몽

입력 2014-12-16 05:36 수정 2014-12-16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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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급락과 함께 신흥시장이 휘청이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진열대가 텅빈 상점을 소비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블룸버그

신흥시장이 지난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와 유사한 사태에 빠졌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가 급락에 따른 경기 침체와 함께 주식·채권·외환시장이 요동치면서 러시아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위기가 심화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15일(현지시간) 달러 대비 사상 처음으로 60루블선이 무너졌다. 베네수엘라 국채는 급락했고, 태국증시는 11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빠졌다. 브라질 회사채시장 역시 휘청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같은 상황은 지난 1998년 신흥시장이 외환위기에 빠졌을 당시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외환위기 이후 신흥시장 주요국이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유연한 환율정책을 도입하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유가 급락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등장했다. 경제의 상당 부분을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신흥시장 주요국 경제가 유가 폭락에 따른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위기가 고조되면서 먼저 돈이 움직이고 있다. 미국에서 지난주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서 빠져나간 돈은 25억 달러(약 2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 1월 이후 최대 규모다.

피터 래니건 CRT캐피털그룹 신흥시장 투자전략가는 “투자자들은 (신흥시장에서) 청산 모드에 들어갔다”며 “(최근 수년간 증시 랠리에 따른) 승자와 패자 모두를 팔아치우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은 말 그대로 ‘패닉’ 상태다. 루블화와 함께 터키 리라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고,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 역시 1998년 이후 가장 낮은 상황이다. 신흥시장 주요 20개국 통화지수는 10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증시도 휘청이고 있다. MSCI신흥시장지수는 7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이달 들어 낙폭은 8%를 넘었다. 러시아 모스크바증시 RTS지수는 이날 10% 폭락했다.

투자심리가 악화하면서 CBOE신흥시장ETF변동성지수는 2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으며 추가적인 하락을 예고하고 있다.

채권시장을 둘러싼 먹구름도 짙어지고 있다. 브라질 최대 정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회사채 금리는 사상 최고치를 나타났다. 최근 유가 급락 여파로 3분기 실적 발표를 두 차례 연기했다는 소식이 투자자들의 불안을 키웠다.

문제는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앞으로 악화일로가 예상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나홀로’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긴축 고삐를 조인다면, 사태는 예상하기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마이클 로체 시포트그룹 투자전략가는 “투자자들은 그동안 저금리와 높은 상품가격 전망에 기초해 투자전략을 세웠다”며 “상황이 달라지면서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의 재배치는 (에너지 등) 부진한 업종과 국가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글로벌시장의 향방은 유가는 물론 연준의 통화정책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연준은 오는 16일부터 이틀간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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