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권에선 작년에 겨우 첫 여성 행장이 나왔다. 권선주 기업은행장이 그 주인공. 부행장도 많지 않다. 우리은행에서 얼마 전 115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부행장이 탄생할 정도다. 그래서 지난 2002년 출범한 여성금융인네트워크는 은행권 책임자급 이상 여성 인력이 30%를 넘도록 하겠다며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면 희박해지는 산소처럼 여성도 희박해지는 상황은 선진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에선 최근 연립 여당인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과 사민당(SPD) 지도부가 겨우겨우 성평등 법안에 합의를 이뤘다. 사민당 소속 마누엘라 슈베지히 여성가족청소년부 장관이 주도한 법안은 반대가 심했다. 상장 대기업의 경우 경영진과는 별도로 구성되는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 seat)구성원의 최소 30%를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포브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3선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꼽힘에도 불구하고 독일 재계 역시 남성 중심이 심각했던 것. 법안이 국회에서 최종 통과되면 독일 증시 DAX 블루칩 지수에 편입돼 있는 108개 대기업들은 오는 2016년까지 170개 이사 자리를 여성에게 내줘야 한다.
경영에 참여하는 이사회 구성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DAX30 편입 기업 가운데 여성 이사 비중은 7.4%에 불과하다. 절반이 넘는 기업에는 여성 이사가 한 명도 없고 블루칩 기업 가운데 여성이 CEO인 기업도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선진국에서 여성들이 대학 졸업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기업 부문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경우가 이렇게 극히 적다 보니 독일처럼 `강제 할당`을 하는 법안이 나오는 상황이다.
혁신과 창조의 대명사 실리콘밸리에도 여성이 많을 것 같지만 경영진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백인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로펌 펜윅&웨스트의 조사 자료를 인용, 보도한데 따르면 실리콘밸리 기업의 여성 리더의 비중은 지난 20년간 점차 늘어나긴 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150대 기업 가운데 여성 이사는 겨우 10% 밖에 안 된다. 이를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100대 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21%가 된다.
이번 조사 보고서를 공동 저술한 펜윅&웨스트의 데이비드 벨 파트너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 리더의 비중이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지만 마술같은 일(급격하게 여성 리더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은 없었다"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여성이 최고경영자(CEO)인 실리콘밸리 기업의 경우가 남성이 CEO인 경우보다 여성 이사의 수가 더 적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데이터 분석업체 인터라나의 CEO인 앤 존슨은 "여성 CEO로서 가능한 많은 여성 인재들을 리더로 키우고자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인재조차 너무 적다"면서 "특히 벤처캐피탈(VC) 분야에선 전무하다시피 하다"고 전했다.
펜윅&웨스트의 조사에선 회사의 규모가 다양성을 확대하는데 있어 중요한 변수로 나타났다. 실리콘밸리에서 15위까지 드는 기업들에는 평균 1.6명의 여성 이사가 있었다. 150개 회사 전체를 볼 때 여성 이사 수는 0.9명. S&P100 기업에는 평균 2.6명의 여성 이사가 존재한다.
여성 CEO 배출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했다. 조사대상 기업의 37.5%에는 여성 사장이나 여성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존재했다. 반면 S&P100 기업에서 이 비중은 7.1%밖에 안 됐다.
데이비드 벨 파트너는 "자질을 갖춘 여성 풀(pool)이 상당히 많고, 이런 여성들을 잘 찾을 수 있는데 특화된 인력업체를 고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