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수학문제를 볼 때나 대입 지원과정의 눈치작전을 볼 때마다 내가 학생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 수준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준인 데다 복잡한 입시제도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 아들이 뭘 어떻게 해서 대학에 들어갔는지, 원서를 몇 번 썼는지, 수시였는지 정시였는지도 나는 잘 모른다. 아이를 성공시키려면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 세 가지가 꼭 있어야 한다는데, 우리 집의 경우 아빠의 무관심 하나는 충분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었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읽은 부자 간의 카톡대화-. “아들, 오늘 추우니깐 옷 든든하게 입으렴. 그 동안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승자가 된다면 자만하지 말고, 패자가 된다 해도 절망하지 마라. 오늘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잊지 말고 시험 잘 보렴… 저녁에 집에서 보자꾸나. 아빠가 언제나 사랑해.” 수능시험 날인 11월 13일 오전 6시 넘어 보낸 메시지다. 이 아빠는 너무 바빠서 일찍 나갔거나 전날 밤 집에 안 들어왔나 보다. 모처럼 좋은 말로 아들을 격려하느라 정말 애 많이 썼다.
그런데 1분도 채 안 돼 아들이 보낸 답은 “…아빠… 나 아직, 고 2야”였다. 아빠라는 글자의 앞과 뒤에 있는 말줄임표는 ‘어휴, 한심한 아부지’라는 뜻이 아닐까. 이 대화를 그날 오후 인터넷에 공개했으니 아빠는 곱빼기로 망신을 당한 셈이다.
세상에, 어떻게 아들이 고 2인지 고 3인지도 모를까? 아무리 바쁘고 자녀교육 문제를 아내에게 떠맡기고 산다 해도 그렇지. 아이의 나이가 자꾸 바뀌고 학년도 매년 달라지니 착각할 수도 있다고 이해해 줘야 하나?
사실 아버지들은 자녀를 잘 모른다.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모처럼 밥상에 앉아 대화를 한답시고 기껏 하는 말이 “근데 너 요즘 몇 등 하냐?” 이런 거니 대화가 될 턱이 있나? 그놈의 대화 때문에 15세 중학생이 가족들 보는 앞에서 투신자살한 사건도 있다. 지방에서 교사로 근무 중인 아버지가 주말에 집에 와 대화를 하자며 가족회의를 열었다. 그는 성적이 떨어진 아들에게 “너만 공부 잘하면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할 텐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아들이 “그러면 나만 없으면 행복하시겠네요”하며 일어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참 안타깝고 무서운 일이다.
지나간 일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나도 반성할 게 많다. 한 번은 입대한 둘째가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그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너 어디냐?” 했더니 평택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거기 왜 갔는데?”하고 물었다고 한다. 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간 그 다음부터 이 녀석이 귀대를 하면서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걸 뭐라고 할 수도 없게 됐지만, 내가 아이에게 무관심해서 그랬던 건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술에 취해서 그리 된 것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