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책임감 없는 사회

입력 2014-12-18 10:28 수정 2014-12-1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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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자본시장부장

17일 저녁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있었다. 올해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변호인’은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명량’은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관에서 직접 영화를 관람했던 입장에서 두 영화를 보며 떠올렸던 생각들이 다시 상기되었다. 내 주관적인 관점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두 영화는 어느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해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영화 명량은 다 알다시피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시대 배경으로 한다. 때는 1597년.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 조선은 삼정(三政)의 문란이 본격화된다.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의 문란이 그것이다. 전정은 오늘날 부동산세에 해당할 것이고, 군정은 병역의무, 환정은 근로소득세나 부가가치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조선시대를 지탱하던 세금체계는 임진왜란 이후 무너졌다. 권문세가들은 내던 세금도 내지 않았고, 병역의무도 하지 않았다. 그 모든 책임은 가혹할 정도로 백성들에게 전가되었다.

부동산을 쌓을 만큼 쌓으면서도 세금은 내지 않고, 세금부담은 백성들의 몫으로 넘겼다. 심지어 쓸 수도 없는 땅과 공터에도 세금을 부과하고, 병역의무도 오직 힘없는 백성들의 몫이었다. 난을 일으켰던 홍경래 같은 사람이 없으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세금을 내야 할 자들이 내지 않은 세금은 몽땅 없는 사람들이 냈던 시대다. 세금을 낼 수 없어 도망가면 이웃이나 친인척에게 부과하는 인징(隣徵)이나 족징(族徵)은 가렴주구(苛斂誅求)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일 것이다.

임진왜란 후 300년이 흘러 조선은 망한다. 그 300년이라는 시간은 삼정 문란이 정점을 향해 달려가던 시간이었다. 동시에 왕실 친인척들이 국정을 농단하던 세도정치가 발호하던 시간이었다. 백성들의 피눈물을 짜낼 수 있는 권력쟁탈전만이 난무하던 시기였다. 조선 망국의 원인을 이 짧은 지면에서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삼정문란과 세도정치가 수많은 망국의 이유 중 하나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명량해전의 이순신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자기 책임에 최선을 다했다는 극히 소수의 상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가 아무리 영웅이라한들 그 전쟁 이후 조선은 망국의 길로 달려갔고, 권력을 휘두르던 권문세가들 중 책임감을 갖고 시대를 응시하던 이는 별로 없었다.

영화 명량은 다시 한번 영웅 한 사람이 시대를 결코 바꿀 수 없음을 보여주는 서사다. 이순신 그가 몇 번의 전투에서는 이겼을지언정, 그 시대가 안고 있던 역사적 과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서구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귀족은 그 신분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고 싶지는 않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태를 목도하고 있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따위를 언감생심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가렴주구만 없어도 다행일지도 모른다.

영화 명량이 조선시대를 살던 군인이 자기 책임을 어떻게 다했는지를 보여줬다면, 영화 변호인은 변호사라는 직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상기시켜준다.

우리는 과연 자기가 서있는 자리에서 어떤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까? 뻔한 애국심 타령은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소소한 일상의 책임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공자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즉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말로 각자가 자신의 분수와 명분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가족들을 마주하는 대통령의 자세는 결코 공자의 ‘君君’은 아니었다. 각료회의에서 수첩 받아적기에 혹은 받아적는 척하는 데 몰두하는 현 정부 관료들의 자세는 ‘臣臣’이 아니다. 대통령과 관료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 권력이나 권한의 대소를 막론하고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이나 권한에 비례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순신이 영웅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 송우석이 정의로운 변호인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는 결코 좋은 세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그 사회가 얼마나 무책임한 사회였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2014년 지금을 사는 우리는 책임감 있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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