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전쟁, 푸틴과 오바마의 외길 승부] 국가부도 벼랑 끝에 선 푸틴, 전의 불태워

입력 2014-12-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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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기자회견서 “위기는 서구 제재 탓, 2년 안에 진정될 것”...물품 사재기·루블화 급락 등 불안 여전

▲유가 하락이 촉발한 러시아 경제위기에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더욱 악화할 조짐이다.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추가 제재 법안에 서명했다. 같은 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구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위기는 2년 안에 해소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FP연합뉴스•블룸버그

국가부도의 벼랑 끝에 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등 서구권에 대한 전의를 불태웠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연말 기자회견에서 루블화 폭락 사태에 대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최근의 위기에도 러시아는 굴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보였다.

그는 “중앙은행은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려 루블화 유동성을 줄였다”며 외환보유고를 낭비하지 않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현재 4190억 달러(약 460조원)의 외화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상황을 개선할 것이라고 푸틴은 덧붙였다.

또 국제유가가 폭락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 최근 위기의 배경이라면서 지난 20년 동안 러시아가 에너지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다변화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푸틴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도 약 2년이 지나면 경제가 성장 기조로 돌아설 것”이라며 기업들이 달러로 보유하고 있는 수출대금을 풀어 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을 촉구했다.

최근 경제 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크림 병합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면서도 서방권의 제재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 경제위기에 끼친 영향이 25~30% 정도”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날 푸틴의 발언에 대해 정작 금융위기에 대한 대처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며, 핵심이 빠졌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경제전문방송 CNBC는 푸틴이 경제 위기에 대해 외부 요인만을 거론했다면서 시장이 실망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푸틴의 회견 내용이 전해지자 외환시장에서 루블화 가치는 달러 대비 6% 이상 급락하기도 했다.

푸틴은 오는 2017년에는 경제가 성장 기조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 역시 글로벌 원유 수요가 회복한다는 가정에 따른 것으로 자체적인 위기 극복 방안은 없었다는 평가다.

마샤 리프먼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외교정책 방문연구원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은 경제 위기와 관련해 서방의 ‘악의 세력’을 비난했다”며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은 제시하지도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는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3월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에 대한 추가 제재를 공개했다.

EU는 오는 20일부터 회원국 기업의 크림 내 투자나 관광 상품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EU 기업이나 시민은 크림의 부동산이나 기업을 매입할 수 없으며, 크림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과 서비스 제공이 금지된다.

EU 기업은 또 운송과 통신 그리고 가스 및 석유 탐사 등 에너지 부문에 사용될 수 있는 물품과 기술을 수출할 수 없다.

도이체방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서방의 경제제재가 지속되면, 러시아에 대한 투자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러시아를 추가로 제재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법안에 서명했다고 즉각 제재를 추가하는 것은 아니며 현지 상황에 따라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긴밀하게 공조해 신중하게 법을 적용할 것”이라며 “그럴 상황이 온다면 법에 규정된 권한을 사용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에서는 불안을 감추지 못한 주민이 물품과 외화 사재기에 나서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달러·루블 환율이 사상 처음으로 80루블을 돌파했던 지난 16일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의 한 모스크바 지점에는 수십명이 루블화를 달러나 유로로 환전하고자 줄을 지어 기다렸다. 갈리나라는 이름의 한 퇴직자는 “연금 일부를 달러로 바꾸려고 나왔다”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루블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5일 새벽 2시 모스크바에 위치한 이케아 매장은 물품을 사고자 문 열기도 전에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댔다가 전했다.

환율 폭등에 러시아에서 영업을 중단하는 글로벌 기업도 늘고 있다. 애플은 환율 급등으로 제품 가격을 책정할 수 없다면서 현지 온라인 판매를 중단했고, 제너럴모터스(GM)와 아우디 등 주요 자동차업체 역시 현지 영업을 일시적으로 멈췄다. 이케아는 이날 제품 가격 급등에 따른 가격표 교체를 위해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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