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인력 노령화 비상구 없다]은행 책임자급 비중 점점 느는데…올 해고비용 3250억 ‘사상 최대’

입력 2014-12-2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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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보다 해고비용 58%나 급증…지점 축소 속 인력구조는 수년째 비슷

#A은행 본점의 한 경영기획 부서에는 총 7명의 부서원 중 대리급 이하 직원이 없다. 부장을 포함해 차장 3명, 과장급 3명이 구성원의 전부다. 이에 지난해 승진한 책임자급인 막내 과장 K씨가 온갖 허드렛일을 전담하고 있다.

B은행 수도권 지점에서 부지점장만 5년째인 P부장. 과거 2~3년이면 지점장 승진이 예고됐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그는 인사 적체가 심각해 퇴직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헌신짝 취급 당하는 기분이 든다’는 선배의 말에 임금피크제는 이미 그에게 관심 밖이다.

은행권의 인력적체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모바일뱅킹 등 IT서비스 기술의 발달로 지점 수는 줄고 있지만 인력 규모에서는 수년째 대동소이하다. 영업력 강화와 수익성 개선을 위해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지만 노조 설득, 해고비용 등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은행원들이 ‘은행의 꽃’으로 불리는 지점장 자리를 차지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년간 국민·신한·우리·하나·외환·SC·씨티은행 등 국내 7대 은행의 과장~부장급 중간 간부 비중은 행원 등 비관리자급보다 월등히 높았다. 지난 9월 기준 이들 은행의 직원수는 7만5084명으로 이 중 4만명이 과장 이상 책임자급이다.

이렇듯 책임자급 비중이 높아지면서 은행들은 인건비 부담과 생산성 하락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총이익 대비 인건비 비중은 2011년 25.7%에서 지난해 33.1%까지 오른 상태다.

은행원 노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동안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올 3분기 기준으로 은행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수년째 변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년 전보다 2년가량 근속연수가 연장돼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은행별로는 조기통합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직원 간 평균 근속연수가 외환은행이 17년9개월으로 가장 길었던 반면 하나은행은 12년4개월로 가장 짧았다. 두 은행의 근속연수가 무려 6년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국민은행은 유일하게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2개월 줄었다. 올해 초 4200명에 달하는 계약직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결과다.

문제는 은행들이 인사적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의 전직을 지원하는 등의 방안을 고민 중이지만 비용문제 등 노조와의 타협점을 찾기 어렵다.

7대 시중은행이 올해 3분기까지 임직원들의 명예퇴직 등에 사용한 해고급여(명퇴금)가 3250억원에 이르고 있다. 1년 전 1915억원보다 58%나 급증한 규모다. 상반기 임금피크제가 적용돼 구조조정으로 빠져나간 인력들에게 쥐어준 해고급여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씨티은행이 점포 30% 가량을 줄이고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결과다. 씨티은행은 기존 190개 점포 가운데 56개(29.5%)를 통폐합하고 영업구역을 서울과 부산 대구 대전 인천 광주 등 전국 6개 주요 도시로 좁혔다. 희망퇴직 인원만 6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은행들의 경우 노사 합의를 하고도 고비용으로 인해 희망퇴직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직원들 입장에선 정년은 보장되지만 만 55세에 연봉이 깎이는 임금피크제보다, 몇 년치 월급을 받고 회사를 떠나는 희망퇴직을 선호한다.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도 마땅히 하는 일이 없어 눈치만 보게 된다는 점에서 희망퇴직을 부추기고 있다. 한 은행 임금피크 적용 직원은 “전표 검사 등 후선 업무를 주기는 하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이라며“ ‘임피’라는 딱지 때문에 후배 눈치도 봐야 하고, 고객들에게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를 방증하듯 올해 외환은행에서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은 인원 총 119명 중 은행에 남겠다고 밝힌 은행원은 7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112명은 모두 회사에 특별퇴직을 신청했다. 하나은행도 임금피크제 대상은 총 149명이며 이 가운데 100여명 이상이 희망퇴직을 택했다.

은행권에서 인력적체 현상 돌파구로 도입했던 임금피크제도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현재 금융노조에 소속된 금융사는 총 36곳이다. 이 가운데 16곳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나머지 20곳은 임금피크제를 운용하지 않고 있다. 은행 18곳 가운데 신한·농협·한국SC·한국씨티·대구·부산·제주·수협 등 8곳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한편 올해 금융기업의 임금·단체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오는 2016년부터 정년을 기존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연장하는 이슈를 두고 노사 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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