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 칼럼]한국의 민간정책 연구소를 위하여

입력 2014-12-2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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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한국이 이룩한 제1차 한강의 기적에서 대기업과 정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대기업과 정부가 제2차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딜레마가 아닌가 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날, 한국에서 강의를 하는 핀란드 기업가 겸 교수를 만났다. 그는 ‘한국의 문제는 지나친 대기업과 정부 편향적 사회구조’라고 단언했다. 그는 수많은 우리나라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정치, 언론과 학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 의사결정 구조의 지난친 편향성이 한국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과정을 나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대기업에 불리한 보도는 잘 나가지 않는다. 거대 언론에 불리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편향성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대기업이 된다. 한국의 혁신은 대기업과 작은 벤처기업들과의 공생 생태계를 통해 이룩된다. 창조경제는 공정한 게임의 룰인 경제민주화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추격자 전략에서 개척자 전략으로의 전환시대 패러다임은 대기업과 정부 중심의 사고에서는 확산되기 어렵다. 대기업을 위하여 공정한 사회적 가치 창출의 룰이 새로이 정립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사회적 가치와 제도를 만드는 과정은 경제사회 연구소들에서 시작된다. 미국에는 다양한 민간 연구소들이 활동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는 대기업과 정부 지원 연구소만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첫 단추다. 이러한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열심히 연구활동을 하고 있으나, 자유로운 다양한 보고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한국의 불편한 진실이다.

그렇다면 대기업과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독립된 다양한 보고서를 낼 수 있는 역량 있는 연구기관을 만드는 조건을 살펴보자. 우선 유능한 연구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대학에는 유능한 인력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분들도 연구비 지원처에 대해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결국 대기업도 정부도 아닌 제3의 연구비 조달 방안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있으나 사실상 정부의 연구비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정부에서는 나름대로 국가발전 정책 제시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대기업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중소벤처 정책 연구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벤처기업의 경우 독립된 연구기관조차 없다. 국가 성장의 3분의 1을 담당하고 질좋은 일자리 증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2000년 세계 최고 수준의 벤처 생태계를 이룩하고도 정부의 정책 오해로 10년 벤처 빙하기에 돌입한 역사적 평가가 이뤄지기 위해서도 중소 벤처를 대변하는 순수 민간 정책연구가 절실하다.

결국 중소 벤처기업들이 대기업과 정부에 불평은 늘어 놓으나, 정책 제시를 위한 활동에는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닌가 한다. 경제사회 정책들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능한 인력이 다수 투입되어야 설득력 있는 대안들이 도출된다. 도출 이후에도 의견 수렴을 위한 공개 포럼과 언론과의 소통이 필요하다. 대기업 연구소 하나보다 전체 벤처 정책 연구 예산이 비교할 수 없이 적은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2013년 9월 시작된 창조경제연구회라는 작은 민간 연구소가 14회의 연구보고서와 공개포럼을 통해 작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창업자 연대보증, 공인인증서 규제 개혁, M&A 세제 개혁, 주식옵션 세제개혁, 정부3.0 플랫폼 도입, 기업가정신 교육 확대, 코스닥 독립 추진, 특허법원과 징벌적 배상제, 벤처인증제 개선, 소셜벤처’ 등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혁신을 이끌어 내는 데 기여했다. 아마도 대한민국 경제사회 연구소 중 최대의 정책반영 성과가 아닐까 한다.

이제 이러한 순수 민간 연구소가 확산돼야 제2의 한강의 기적이 가능하다. 창조경제 구현에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이를 위해 뜻있는 분들의 동참이 지속 가능성을 위한 충분조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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