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업계 ‘큰손’ VIP 고객으로 떠오른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대한민국 유통 지도를 바꿔놓고 있다. 국내 백화점과 면세점의 최대 고객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내국인들보다 요우커들을 위한 서비스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요우커 맞춤형 서비스로 리무진과 쇼핑도우미 제공까지 등장했다.
명동과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 이대 정문 등 주요 상권의 최대 고객 역시 요우커.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성형외과와 화장품 매장, 호텔들이 즐비하게 들어서면서 상권 지도가 변화하고 있다.
◇올해 600만명, 면세점·백화점 VIP 등극 =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432만명으로 전년보다 무려 53% 증가했다. 2014년에는 600만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한국에 와서 쓰는 지출 비용도 급증했다. 요우커 1인당 평균 지출액은 2008년 130만원에서 2013년 236만원으로 80% 급증했다. 한국에서 지출한 총 비용은 2013년 7조7000억원으로, 2014년에는 10조원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2014년 요우커가 유통·숙박·운수문화예술 등 각 업종에 미칠 파급 효과는 23조2000억원(약 221억1000만 달러)으로 추정하며, 이는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 예상치의 1.6%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요우커 1000만명 시대도 머지 않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2018년부터 연간 1000만명 요우커가 국내에서 30조원 이상을 소비할 것”이라며 “이는 2013년 국내 소매 판매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전망했다.
요우커는 국내 유통업계 큰손으로도 등극했다.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2014년 상반기 중국인 매출이 지난해보다 109.8% 급증했고, 전체 매출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16.5%에 달했다. 신세계백화점에서도 2014년 1∼11월 중국인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6% 늘었고, 외국인 전체 매출액의 약 50%를 차지했다. 특히 중국인 VIP들의 평균 객단가(매입액)는 300만원으로, 일반 외국인 고객 평균(50만원)의 6배에 이른다.
현대백화점 역시 추석 연휴기간에 요우커 특수를 톡톡히 봤다. 현대백화점에서 2014년 9월 6·7·10일 3일간 중국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8.6% 신장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외국인 매출 신장률인 49.5%보다 두배가량 높은 수치다.
면세점에서도 요우커는 VIP다. 롯데면세점의 2014년 3분기 중국인 매출 비중은 53%로 절반을 넘어섰다. 반면 일본인 매출 비중은 1분기 13%에서 3분기 10%까지 줄었고, 내국인 비중도 32%에서 30%로 감소했다. 신라면세점도 중국인 매출 비중이 2014년 상반기 60%를 돌파했다.
◇요우커 1000만 시대… ‘맞춤형 서비스’ 개발 총력 = 국내 유통업계는 요우커를 모시기 위해 ‘요우커 맞춤형 서비스’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2014년 9월 국내 백화점 업계 최초로 중국인 고객만을 위한 기획전을 열었다. ‘한류 인기브랜드 상품전’을 열고 중국인 고객이 선호하는 32개 브랜드를 선정해 인기상품을 선보인 것. 행사장을 방문하는 고객에게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금에서 착안한 골드바 모양의 초콜릿을 무료로 제공했다. 롯데백화점은 이 같은 행사를 해마다 이어갈 방침이다.
신세계백화점은 한류스타의 일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2000만원 상당의 한류테마 럭셔리 여행패키지를 선보여 요우커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최근에는 국내 여행업체와 함께 ‘한류특화 여행상품’도 마련했다. ‘한류 신데렐라’를 콘셉트로, 중국인 여성 VIP 고객에게 3박4일 동안 유명 스타일리스트 조언을 포함한 신세계백화점 쇼핑, 최고급 호텔 숙박, 청담동 뷰티샵 이용, 화보 촬영 등의 서비스를 일괄 제공한다.
조선호텔·신라호텔·JW메리어트·힐튼호텔 등 서울 특급호텔은 숙박 중국인을 대상으로 리무진 픽업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들 호텔에 묵는 중국인 관광객이 신세계 백화점 쇼핑을 원하면 최고급 리무진으로 본점·강남점까지 직접 태워오는 방식이다. 쇼핑 과정에서도 신세계 소속 전담 직원이 곁에서 통역과 상품 설명을 맡아 이들의 쇼핑을 돕는다.
신세계백화점 영업전략담당 홍정표 상무는 “중국인 VIP고객은 제2의 내수로 불릴 만큼 구매력이 커, 내수 부진을 타개할 중요한 성장동력 중 하나”라며 “연중 다양한 중국인 마케팅을 진행해 어엿한 핵심 고객으로 자리잡은 중국인 고객들을 잡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면세점도 요우커는 특별 관리한다. 면세점들은 요우커가 선호하는 브랜드를 앞다퉈 입점시키고 있다. 롯데면세점의 경우 리리코스, 에스쁘아, 궁중비책, 루즈앤라운지 등 지난해 대비 늘어난 브랜드만 약 50개다. 신라면세점도 아이오페, 스타일난다 등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최근 오픈한 롯데월드몰 면세점은 영업면적이 1만990㎡에 달해 중국 하이난 면세점(7만㎡)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만큼 수억원 대의 명품을 구매하는 ‘특급 요우커’들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를 구상 중이다. 호텔뿐 아니라 항공권까지 일부 지원하고, 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인 판다를 이용한 행사 ‘1600 판다 월드투어(1600 Pandas World Tour)’를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주요 상권 곳곳, 요우커 거리로 변신 = 요우커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소비가 일어나면서 국내 주요 상권 지도까지 변하고 있다. 요우커가 많이 찾는 곳은 기존 서울 명동·롯데월드·남산타워에 국한됐지만 최근에는 이화여대 정문, 홍대, 가로수길 등 서울 주요 상권은 물론 부산, 청주, 제주도 등 전국 곳곳으로 확대되고 있다. 부산을 찾은 요우커는 지난해 70만명이었으나, 올해 1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미 주요 상권들은 요우커 입맛에 맞게 변신하는 중이다. 중국어 간판 식당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물론 중국인 관광객이 선호하는 화장품과 호텔, 성형외과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다. 명동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던 죽 전문점과 버거킹 등의 외식매장이 자취를 감추고 중국인이 선호하는 길거리 음식 노점들로 교체됐고, 화장품 매장이 대거 들어섰다.
가로수길 상권도 들썩거리고 있다. 한류 열풍으로 인해 요우커들에게 가로수길이 필수 관광코스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성형외과의 대세가 신사동으로 넘어가면서 의료 관광과 연계해 가로수길 쇼핑과 맛집 여행을 즐기는 요우커들도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중국인들이 따로 보는 가로수길 지도까지 나와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핵심 손님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호텔도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다. 신라호텔은 작년 하반기 서울 강남 역삼역에 ‘신라스테이 역삼’을, 스타우드는 서울 청담역 인근에 ‘알로프트 강남’을 오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