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한글배운 박정열 할머니, 팔순 앞두고 책출간

입력 2015-01-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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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열 할머니] 사진=연합뉴스

‘세월아 가지 말고 거기서 있거라. 니가 가면 나도 따라가도 마음이 서글퍼서 내가 울잖니’(‘세월’ 중 일부)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뒤늦게 한글을 배워 책을 펴내 화제다. 주인공은 전남 장성군 장성읍에 사는 박정열(78) 할머니다.

그는 70세 되던 2005년부터 장성공공도서관 한글교실 ‘문불여대학(文不如大學)’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글을 깨우친 지 8년 만에 박 할머니는 남편과 자식,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와 일기, 기행문 등 57편의 글을 모아 ‘나는 문불여대학생(文不如大學生)이다’를 펴냈다.

고급스럽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배워가며 느꼈던 기쁨과 가족에 대한 고마움이 담담하게 녹아있다.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랑하는 여보 당신, 당신과 나와 연을 맺은 지 55년을 맞이한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서 머리에 흰 꽃이 피었군요. 그동안 우리가 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살아왔지요. 그러나 당신이 부족한 나를 넓은 아량으로 채워가며 살아주셔서 항상 감사했지요’라며 애절함을 표현했다.

‘세월’이라는 글에서는 ‘세월아 가지 말고 거기서 있거라. 니가 가면 나도 따라가도 마음이 서글퍼서 내가 울잖니. 그러니까 가지를 마라. 니가 가서 내 청춘도 가고 젊음도 갔으니 나는 니가 원망스럽다. 그러니 제발 가지 않는다고 약속 좀 해다오…’라며 세월의 무상함을 표현했다.

‘홍시’에서는 ‘어머니는 생전에 홍시를 너무나도 좋아하셔서 제가 홍시만 나오면 꼭 사서 부쳐 드리곤 했는데, 이제는 홍시는 많은데 어머니가 안 계시니 마음이 아픕니다’며 그리운 모정을 노래했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에 태어난 박 할머니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했다. 젊은 나이에 시집을 가서 장성읍에서만 50년 넘게 신발가게를 하며 4남매를 모두 길러냈다.

어느 날 경로당 친구들이 장성공공도서관에 다니는 것을 보고 무작정 따라나선 것이 계기가 돼 지금은 초등학력과정인 3~4학년반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는 최근에는 필암서원에 다니면서 사자소학, 추구집, 명심보감까지 배우며 향학열을 붙태우고 있다.

박 할머니는 “못 배운 게 늘 한이었는데, 배우는 것이 늘 즐겁고 재미있다”며 “건강이 허락하면 중학교 과정까지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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