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가치는 원형사관에 바탕을 둔다면 한중일 3국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의 대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로서는 중국의 부상, 일본의 우경화 그리고 북한의 도발 등에 대해 원형사관으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원형사관에 바탕을 두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관을 조명한다. 근본적으로 두 나라 사이에는 역사관의 격차가 존재한다. 일본에는 정사가 없으며 ‘승자가 정의다’라는 인식으로 정복을 중시하고 명문이나 정의 관념이 없다. 일본 국학의 대가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신도로 다스릴 수 있을 때는 신도, 불교가 효과적일 때는 불교로, 일본에는 일정한 사상이 없고 상황에 적합한 것을 채택해 간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일본에서의 정의는 승리자의 것일 뿐이다. 놀라운 일은 삼국 중 일본에서만 춘추사관에 기반을 둔 정사가 없다고 한다. 이는 가치 기준이 없이 오로지 힘과 대세에 따른 대세사관을 신봉함을 뜻한다. 이런 역사관에 바탕을 둔다면 현재 진행 중인 일본의 우경화의 끝이 어딘지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 고민이다. 원형에 바탕을 둔 근본적 문제이기 때문에 한중이 아무리 역사 문제를 갖고 일본으로 하여금 시정을 요구하더라도 쇠귀에 경 읽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또한 시간관에서도 한중일 사이에 격차는 뚜렷하다. 한국인은 죽음을 ‘돌아간다’는 개념으로 인식하고 저승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시각을 가져왔다. 그래서 한국인이 ‘역사 바로 세우기’을 외칠수록 원점으로의 회귀를 재촉하는 경향을 보인다. 돌아가는 시간관은 수시로 원점 회귀와 역사 바로 세우기로 나타나곤 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근본적으로 한국인과 다르다. 그들에게 죽음은 한국어로 화살을 뜻하는 ‘사루(去)’를 뜻한다. 날아가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를 가볍게 여기는 심성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자주 역사인식의 왜곡으로 나타나게 된다. 일본인의 역사관은 흘러가는 역사관이다. 그 당시 힘이 있는 자를 따르는 대세추종이 무엇이 잘못인가라고 되묻게 된다. 역으로 힘이 약하면 당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역사 왜곡에 대해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 대해 아무리 역사 인식을 외쳐도 이 시간관의 차이는 메울 수 없다. 결국 서로 하는 말은 상대에게 마이동풍이 돼 감정만 악화시킬 뿐이다.”
저자는 문화 충돌보다 심각한 원형 충돌이 역사 발전의 추동력이라고 말한다. 원래 한일은 인종과 언어적 뿌리가 하나였지만 1300여년 전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일본이 백제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A.D.663년의 백강전투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신라는 백제와 왜를 한반도에서 추방해 정통(통일)국이 되고 패망한 백제 세력은 일본열도에서 신라에 대한 증오심을 증폭시키면서 고유의 문화를 형성해 왔다.” 저자의 지적처럼 오늘날 한일 민족의 원형은 완전히 대립적이다.
우리는 이웃한 나라들의 원형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한중일 3국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펼쳐 보이는 멋진 책이다. 노학자의 경륜과 지혜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