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의 경영학] 로스차일드家 ‘거주 국가에 충성’ 제1원칙… 품위를 갖춘 부와 권력

입력 2015-01-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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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세계금융 절대강자 군림… 美 연준 창설·이스라엘 건국도 주도

“현재 유럽에는 여섯 개의 강국이 존재한다. 바로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그리고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영국 벤자민 디즈레일리 총리는 로스차일드 가문을 이렇게 묘사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화 바람을 타고 자산규모 수천억 달러의 은행들이 등장하기 전인 19세기와 20세기 초 세계 금융권을 지배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오랜 기간 존속되어 오며, 유대인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지지를 받아 왔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등 전 세계 각지로 분파된 그들은 자신의 거주 국가에 충성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로스차일드가는 목표 달성을 위한 긴 인내와 통찰력,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거래로 경제사에서 오랜 기간 주목받아 왔다.

◇250년 금융 왕국의 탄생= 1744년 태어난 유대인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 창업자는 대금업과 금화 거래로 사업을 시작해 왕실 재정관리를 맡아 1800년 무렵에는 유럽 최대의 거부가 됐다. 로스차일드의 집은 문미에 눈에 띄는 붉은색 방패를 걸어 놓았다. 붉은색과 방패는 독일어로 각각 ‘로트(Rot)’와 ‘실트(Schild)’라 하는데, 훗날 두 단어가 결합돼 가문의 이름인 ‘로스차일드(Rothschild)’가 됐다.

로스차일드는 1798년 셋째 아들 네이선이 영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벌이며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다. 네이선은 1811년 런던에 NM로스차일드부자은행을 설립해 영국 금융계를 장악해 간다. 그러던 중 1815년 월터루에서 반프랑스 동맹과 나폴레옹의 결전이 벌어졌다. 네이선은 반프랑스 동맹이 이겼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뒤 정보를 바탕으로 공채 매입과 매각을 통해 큰 이익을 남겼다.

워털루 대투기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영국의 베어링스, 독일의 오펜하이머 등 유럽의 금융 가문을 차례로 꺾고 19세기 전 세계 금융업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1875년 영국 디즈레일리 정부에 400만 파운드를 융자해 영국이 수에즈 운하 지분을 사들이는 데 일등공신이 됐고, 나폴레옹으로부터 황금 가격 결정권을 획득해 2004년까지 국제 황금가 결정권을 행사했다. 또 미국 남북전쟁 시 민영 중앙은행을 설립하고, 전쟁에 자금을 댄 데 이어 1910년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법 제정회의를 주도하고 연방준비은행을 실질 관할하는 뉴욕연방준비은행의 주주로 참여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부와 권력, 품위를 갖춘 가문= 한 가문이 진정한 귀족으로 거듭나려면 적어도 3대는 거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문의 1대인 로스차일드는 가문의 창업자로서 평생을 고단하게 살았고, 귀족의 기백이나 품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2대들은 반쪽짜리 부와 반쪽자리 귀족이 될 수밖에 없었다.

로스차일드가는 4대 때부터 선행을 베풀며 국민의 추앙을 받기 시작했다. 로스차일드가 4대 중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리오넬의 장남 내티. 그는 금융거래에 신중한 타입이었지만, 자선사업에는 과감하게 돈을 썼다. 일이 고되고 수입과 사회적 지위도 낮은 영국의 하급 경찰들을 위해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런던 경찰서에 적지 않은 액수의 수표를 보냈다. 또 당직으로 식사를 거른 런던 경찰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자신의 집 주방에 들어와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보답으로 런던 교통경찰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마차가 지나갈 때면 막힘없이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줬다.

내티의 동생 레오도 겸손함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레오는 미래 영국 국왕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경마에서 일부러 왕세자에게 우승을 양보했고, 자신의 은행 직원이 심장병에 걸리자 비용을 부담해 이 직원을 오스트리아로 6개월 동안 요양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로스차일드가는 자신들의 품 안에 들어온 사람은 책임을 지고 끝까지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1929년 미국 월가의 주가 대폭락으로 런던 금융권 은행은 저마다 감원에 나섰다. 하지만 영국 로스차일드은행은 단 한 명의 청소부조차 해고하지 않았으며 직원의 월급을 한 푼도 깎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영국 로스차일드 은행의 직원들은 회사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이와 함께 로스차일드가는 국가를 위한 헌신에도 앞장섰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 거주하는 로스차일드가 후손 헨리는 현대 구급차의 발명가로 파리에 ‘헨리 앤 마틸다’ 병원을 설립했고, 전선에서 사용할 ‘소독과 위생’이라는 책자를 출판했다.

◇이스라엘을 세우다= 이스라엘 건국 문제를 다룰 때 로스차일드 가문을 빼놓고 얘기하긴 어렵다. 19세기 말 프랑스 로스차일드 은행은 알퐁스, 구스타브, 에드먼드 삼형제가 관리했다. 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인 막내 에드먼드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박해받는 러시아 유대인을 위해 팔레스타인의 황무지를 사들여 이곳에 유대인 이주를 돕기 시작했다. 그가 눈을 감는 날까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위해 지원한 자금은 총 600만 파운드. 에드먼드는 갑부였지만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 정착시키는 데에 매번 일정한 운영자금을 정해두고 한 푼도 더 주는 법이 없었다. 또한 이주민이 로스차일드 가문에 기대심리를 키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농업전문가를 고용해 이주시키고, 이주민이 농업을 배워 자립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했다.

에드먼드는 팔레스타인의 환경에 대해 철저히 연구했다. 그는 터키 주팔레스타인의 전 총독을 로비해 팔레스타인에 군사전략 요충지인 유대와 사마리아, 갈릴리 등을 하나하나 사들였다. 그는 언젠가는 전략적 요충지를 이용해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할 거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50년 후 이스라엘 독립전쟁(1차 중동전쟁)이 벌어진다. 이스라엘은 에드먼드가 선견지명을 발휘해 구입한 군사 요충지를 활용해 아랍 연합군의 맹렬한 공격을 막아내고 독립을 실현할 수 있었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이스라엘 국민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건국에 공을 세운 로스차일드 가문을 잊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많은 사람이 아이의 이름을 로스차일드라 짓고 있으며, 이스라엘 곳곳에 ‘로스차일드 거리’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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