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1위 갑부 리카싱이 올 들어 적극적으로 유럽에 베팅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리카싱이 이끄는 허치슨왐포아가 영국 이동통신업체 O2를 92억5000만 파운드(약 15조원)에 인수하는 딜 합의가 임박했다고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O2는 가입자 수 기준 영국 2위 이통사이며 스페인 텔레포니카 자회사다. 허치슨왐포아는 이미 영국 4위 이통사인 쓰리(Three)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인수가 성공하면 영국 1위 이통사가 탄생하게 된다고 통신은 전했다.
양사 합병 후 가입자 수는 3100만명이 넘게 된다. 영국 이통업계는 지난달 유선통신업체 BT그룹이 1위 업체 EE 인수에 나섰다고 밝히면서 합종연횡 바람이 거세가 불고 있다. BT는 당초 EE와 O2를 저울질하고 나서 EE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이후 허치슨이 O2를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았다. O2 인수가 임박했다는 소식에 홍콩증시에서 이날 허치슨 주식은 거래가 중단됐다.
허치슨은 이탈리아에서도 이통사 인수ㆍ합병(M&A)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텔레포니카는 지난 2006년 O2를 177억 파운드에 사들였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되파는 셈이지만 부채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텔레포니카는 지난 10년간 부채가 배 이상 늘었다. 이에 지난해 초 텔레포니카는 부채를 430억 유로 밑으로 유지하겠다고 공언했다.
리카싱은 중국 등 아시아 비중을 줄이고 유럽 사업을 확대하는 등 그의 제국을 재구축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달 초 리카싱은 양대 지주사인 청쿵홀딩스와 허치슨왐포아를 합병하고 부동산 사업을 분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청쿵과 허치슨 합병 등 사업재편 발표에 리카싱은 지난달 마윈 알리바바그룹홀딩 회장에게 빼앗겼던 아시아 최고 부자 자리를 한달 만에 되찾기도 했다.
이는 유럽 투자에 더 많은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일환이라고 통신은 풀이했다. 리 회장은 최근 최소 10억3000만 파운드에 영국 철도업체 에버숄트를 사들일 것이라고 밝히는 등 유럽 자산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리카싱이 유럽에 꽂힌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다. 중국은 경기둔화로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시장이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리카싱은 지난해 중국 내 부동산을 잇달아 처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도 민주화 시위 등 정정이 불안한 가운데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해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인식이다. 이에 리카싱이 중국과 홍콩을 대신해 새로운 시장으로 유럽을 택했다는 것이다.
리카싱의 정치적인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과 막역한 사이였던 리카싱이 시진핑 현 주석과는 소원하다고 전했다. 시 주석이 벌이는 부정부패 척결 운동에 쓰러진 저우융캉과 보시라이 등이 장 전 주석의 측근이었다. 리카싱은 지난 2012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당시 중국이 미는 렁춘잉 대신 친재벌 성향의 헨리 탕을 지지해 밉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