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무릎을 꿇는 낙타처럼

입력 2015-01-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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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무릎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무릎은 작고 어린 내 자식에게는 보호와 양육의 울타리가 되고, 웃어른과 초월자에게는 몸과 마음을 다한 섬김과 존경을 표현하는 신체 도구가 된다.

나이가 들면 무릎이 시리다지만 나이에 관계없이 “슬하가 쓸쓸하면 오뉴월에도 무릎이 시리다”는 속담이 있다. “자식도 슬하의 자식”이라는 말도 있다. “슬하에 자녀가 얼마나 됩니까?”라는 질문도 한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말이 된 슬하(膝下)는 무릎 아래라는 뜻이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움직이다가 부딪히고 다치는 아이를 가장 안전하게 기르는 것은 부모가 다리를 오므려 무릎 안, 곧 슬하에서 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데리고 기를 때가 자식이지 결혼해 떠나고 나면 남과 같다.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사돈의 8촌’이라 하지 않던가.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논 기억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부모의 무릎을 벗어난 아이는 일어서다가 앞으로 넘어지곤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줄리엣의 유모가 “아가, 앞으로 넘어졌니? 철이 들면 뒤로 넘어지겠지”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앞으로 넘어지다가 뒤로 넘어지는 중간에 무릎을 꿇을 줄 알게 되는 게 바로 철드는 게 아닐까.

사막에 사는 낙타는 모래바람을 뚫고 걷기 위해 눈썹이 길고, 물 없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분을 생산하는 지방질이 가득한 혹을 등에 지고 다닌다. 또 하나 두드러진 특징은 무릎에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는 것이다. 사막에 거센 모래폭풍이 휘몰아칠 때 낙타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시련’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무릎을 꿇고 앉은 단봉 낙타’라는 19세기 프랑스 유화를 보면 낙타가 경건한 동물을 넘어 현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느님 앞에, 부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사람은 그렇게 무릎을 꿇는다.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서의 저자 야고보는 가장 기도를 많이 했던 사람이다. 야고보는 예수의 기도 생활과 부활을 보면서 의심을 버렸다. 그는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야고보서 5장 16절)고 말했다. 다른 성서에는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갈라디아서 1장 19절)고 기록돼 있다.

야고보처럼 기도에 열심인 사람을 ‘낙타무릎’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인들은 “머리와 입과 손이 아니라 무릎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악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무릎으로 싸워 기도하라는 것이다. ‘낙타무릎’이라는 찬송곡은 “내 무릎이 다 닳도록 기도할 테니 하늘 문을 열어 응답하소서”라고 노래한다.

그러니 즐겁게 무릎을 꿇어라. 아니 무릎 꿇을 줄을 알아라. 꼭 하느님, 부처님과 같은 초월자나 절대자가 아니라도 존숭하고 경배해야 마땅한 대상 앞에서 무릎을 꿇을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사람이며 발전할 수 있는 인간이다.

시인 김충규(1965~2012)는 <대나무 앞에 무릎을 꿇어라>는 시를 남겼다. ‘대나무 속이 왜 비어 있겠는가/ 나날이 비우고 비우기 위하여/ 사는 대나무들,/ 비운 만큼 하늘과 가까워진다/ 하늘을 보라, 가득 채워져 있었다면/ 어찌 저토록 당당하게 푸르를 수 있겠는가/ 다 비운 자들만이 죽어 하늘로 간다/ 뭐든 채우려고 버둥거리는 자들은/ 당장 대숲으로 가라/당장, 대나무 앞에 무릎을 꿇어라’(끝부분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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