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컬럼]기술금융 밀어붙여 될 일 아니다

입력 2015-02-0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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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헌 시장국장 겸 금융시장부장

최근 금융위원회가 하는 일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많다. 금융산업과 금융회사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본연의 역할보다 윗선 눈치 보기, 정책 성과 내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지난달 28일 금융위가 발표한 은행의 혁신성 평가도 그렇다. 은행의 보수적 금융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정부가 은행의 혁신성 평가까지 해 줄 세우는 모습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은행의 변화를 유도하도록 평가가 필요했다면 공신력 있는 평가기관을 통해 시스템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은가.

평가 취지도 의구심이 든다. 금융위는 은행의 보수적 금융 관행을 개선하려는 것이라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밀어붙이는 기술금융의 성과물을 내기 위한 압박용으로 비친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인 창조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금융위는 창조금융을 내걸었고, 그 핵심에 기술금융이 있다. 중기·벤처기업을 육성해 대기업 중심의 한국경제 체질을 바꾸겠다는 정책 방향에 공감한다.

그러나 정책을 추진하는 방법도, 정책 로드맵에도 문제가 있다. 80~90년대 관치금융 시대처럼 금융회사를 압박해 시장을 통제하려 해선 안 된다. 당국과 금융권 간 마찰이 발생할 뿐 아니라, 설사 당국 지시를 따른다 해도 시늉만 할 뿐 실질적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기술금융도 겉돌고 있다. 금융위가 아무리 혁신성 평가를 실시하고 종합상황판을 설치해 은행을 다그치고, 대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지만 은행들은 시늉만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6개 시중은행이 중소·벤처기업에 대출해 준 기술금융이 6조원으로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당 부분은 기존 대출이라는 것이다. 신규 대출을 한 것이 아니라, 기존 대출을 기술금융으로 꼬리표만 바꿔 붙인 것이다.

그렇다고 은행만 비난할 순 없다. 기술평가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하라고 해서 무작정 대출을 늘렸다가 부실이 커지면 뒷감당은 은행 몫이기 때문이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기술평가 능력을 갖춰 기술금융을 새로운 먹거리로 인식할 때까지 제도적 지원과 시간을 줘야 한다. 은행도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되면 금융당국이 못하게 해도 알아서 한다.

금융위가 3일 개최한다는 금융혁신 대토론회도 과연 필요한 행사인지 모르겠다. 대통령의 브레인스토밍(Brain Storming) 필요성 말 한마디에 갑자기 전 금융권 CEO 100여 명을 불러 모은 것을 보면 씁쓸한 느낌이 든다. 바쁜 일정의 CEO들이 일정을 조정하느라, 적잖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토론회 성과도 의문이다. 나이 많은 CEO를 6시간 동안 앉혀 놓고 무슨 얘기를 듣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 이런 토론이 필요할 만큼 그동안 대화 채널이 없었던가. 대통령 한 마디에 금융권 CEO 100여 명이 꼼짝없이 생고생을 하게 됐다.

최근 금융위가 발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연차보고서 가이드라인도 뭐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가이드라인은 사외이사를 누가 추천하고 회의 참석과 발언 내용, 보수와 거마비, 차량 지원 등 모든 것을 낱낱이 밝히도록 했지만, 의무 사항도 아니고, 예외 규정도 두고 있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하는 일 없이 과도한 보수와 대우를 받는 금융회사 사외이사의 문제를 바로 잡겠다고 칼을 뽑았으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해야지,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을 왜 만들었지는 모르겠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처럼 기술금융의 정책 취지는 좋지만,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다면 추후 실패한 정책으로밖에 기억될 수 없다. 정부 정책은 시장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 무리하게 밀어붙여서는 될 것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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