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몸사리는 애널리스트, 압박하는 증권사?

입력 2015-02-0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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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현 자본시장부 기자

“제 이름이 직접 나가나요? 익명으로 처리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부정적인 멘트하면 회사 쪽에서 별로 안 좋아해요. 그냥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전화기 너머로 짜증스러움이 묻어나는 이 사람은 바로 증권사 애널리스트다. 자신이 분석해 리포트까지 발행한 모 업체에 대해 상세한 질문을 하자 모르겠다고 발뺌을 한다.

지난달 아일랜드계 큰손이라 불리는 펀드사가 이 업체의 지분을 사들였다. 1년 전 지분율을 10%까지 올린 적 있는 펀드사는 78차례에 거쳐 매도와 매수를 반복했다. 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관련 업계의 실적 기대감에 주가가 상승하는 조짐을 보이자 물타기식 투자에 나섰다. 이 애널리스트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그런 일이 있나요? 저도 진짜 모르겠네요”라는 입장만 내놓을 뿐이었다.

물론 모든 애널리스트가 업체 관련 상황과 투자건에 대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리포트를 낸 업체들만큼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통화를 마친 후 이 애널이 냈던 리포트에 대한 신뢰도까지 떨어졌다.

국내 증권사들은 외국계와 달리 대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리포트를 내기 어렵다며 현실론을 토로한다. 증권사 입장에서도 애널리스트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자제해달라는 요구를 할 수밖에 없다. 특히 대기업일 경우 부정적 평가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거나 아예 삭제하며 눈치를 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홀드(hold)’나 투자 의견을 밝히지 않은 ‘NR(Not Rated)’를 표명하면 ‘매도’로 알아서 해석하라는 말도 생길 정도다.

코스닥 시장을 보면 증권가에서 호평을 내놓는 업체들의 당일 주가는 고공행진이다. 그만큼 정보와 지식이 부족한 개인투자자들에게 애널리스트들의 평가는 투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기업의 정확한 실적과 향후 전망에 대한 애널리스트들의 가감없는 평가다. 공정한 투자 환경을 만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정확한 정보를 알려야 증권사와 애널리스트들의 존재 가치도 더욱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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