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給人足(가급인족)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네
몇 년 전 어떤 문예지가 문인들을 상대로 좋아하는 우리말을 적어 보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는 그때 ‘넉넉하다’를 골랐다. 그의 개성 고향 집은 부자가 아니었지만 마음은 넉넉했고, 고향 사람들의 정신자세도 넉넉했다고 한다.
반대말은 뭘까? 모자라다나 부족하다일까? 이 대답은 뭔가 모자라는 느낌이 든다. 모자라다는 충분하다 넘치다의 반대말이 아닐까? 넉넉하다는 말의 어감에 짝할 만한 반대말이 얼핏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아름다운 말이어서 박완서는 넉넉한 걸 특히 좋아한 게 아니었을까?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다는 가급인족도 입춘첩에 잘 등장하는 말이다. 거의 예외 없이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다)’ 다음에 쓴다. 나라에서 백성으로, 집에서 개인으로 평안과 풍족함이 흘러내린다. 일종의 낙수(落水)효과인가?
가급인족의 출전은 중국 후한시대에 반고(班固 32~92)가 저술한 <한서(漢書)>다. 한서는 사마천(BC 145?~BC 86?)의 <사기>와 함께 ‘사한(史漢)’이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중국 고대의 대표적 역사서다. 가급인족과 비슷한 말로는 집집마다 풍요롭고 부유하다는 가돈이부(家敦而富)를 들 수 있다.
정말이지 국태민안 가급인족이면 얼마나 좋으랴? 이른바 요지일월 순지건곤(堯之日月 舜之乾坤), ‘요 임금의 세월에 순 임금 세상’을 바라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이것도 입춘첩에 많이 썼던 문구다.
그런데 우리는 가급인족이나 가돈이부는커녕 가한인빈(家寒人貧)이라고나 해야 할 판이다. 무엇보다 가계부채가 문제다. 2014년 9월 말 현재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37%로 집계됐다. 정부는 올해 20조 한도의 ‘가계부채 구조개선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데, 과연 잘 될는지 걱정이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