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핀테크는 목적이 아니다

입력 2015-02-06 10:42 수정 2015-02-0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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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연구위원

금융권의 화두가 되고 있는 핀테크(Fintech)는 이제 금융업과 관련 없는 일반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핀테크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개념일까?

금융업 현장에는 크게 두 가지 중요한 IT 시스템이 있다. 고객의 정보를 정제해 저장하고 관리하는 정보계와 실시간 조회 및 다양한 금융업무 처리를 지원하는 계정계 시스템이 있다. 각각 분석계, 처리계라고도 불리는 이 두 IT시스템은 금융업무 운영의 실질적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은행 통장의 잔고 조회와 이자 지급, 카드사의 대금 청구와 포인트 적립, 증권사의 주식 거래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금융업무가 이러한 IT 인프라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방대한 업무처리를 IT 기술의 활용 없이 수작업으로 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1990년대부터 전사적자원관리(ERP), 고객관계관리(CRM) 등의 개념이 국내에 확산되면서, 금융사를 포함한 전 업종의 업무 프로세스 지원에서, IT 기술이 보다 가치 있는 지식 개발과 데이터 분석을 통한 경영 의사결정을 지원하게 됐고, 새로운 이익 창출에도 기여하게 됐다. ‘신(新)금융’ ‘IT 금융’ ‘디지털 금융’과 같이 그 명칭만 변화했을 뿐 금융과 IT의 융복합은 꾸준히 발전해 온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 바로 핀테크가 있다. 즉 핀테크라는 단어도 새롭게 만들어졌지만 그 개념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핀테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필자를 포함해 이 분야를 연구하거나,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핀테크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됨에도 다른 각도의 견해를 제기하거나, 보다 신중하게 추진하자는 주장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관련 기사나 칼럼은 대부분 핀테크를 서둘러야 하는데,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내용 일색이다. 이제 ‘핀테크=옳은것(善)’이라는 공식마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비전문가도 핀테크 도입이 시급하다고 쉽게 얘기하니 말이다.

미국의 P2P 대출업체 렌딩클럽(LendingClub)은 다수의 보고서에서 대표적 핀테크 기업으로 손꼽힌다. 금융사가 아닌 개인 간의 대출을 연결해 주는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 받으며, 핀테크의 성공 사례로 부상했으며, 국내에도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렌딩클럽이 2006년 설립된 업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루아침에 생긴 기업이 아닌 것이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 재닛 옐런 의장은 소셜미디어 등 유명 신생기업의 가치 평가가 과장됐음을 시사한 바 있다. 이 대목에서 과거 ‘닷컴 버블’을 인지했으나 끝내 막지 못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임 연준 의장이 오버랩되면서, 우리가 핀테크 기업의 성공을 막연히 맹신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해외 주요 핀테크 업체의 비즈니스 모델이 한국에서는 현재 영업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금융 규제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관련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순서가 뒤바뀐 느낌이다. 국내 금융사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왜 생겨났고 누가 만든 것인가? 오랜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 관행으로 금융산업의 지배구조는 병들기 시작했고,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가 취약한 금융사를 ‘보호하려는 규제’와 더 나빠지지 않게 ‘통제하려는 규제’가 뒤섞이면서 규제의 백화점이 됐던 것이 아닌가. 남들이 하니 우리도 핀테크를 해야겠는데, 규제가 가로막고 있으니 이제 임시방편으로라도 고치자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재 핀테크 관련 논의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비금융사의 지급결제시장 진입 이슈에 대해서도, 리스크 측면 그리고 정보 보안 차원에서 우려되는 점은 없는지 아직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 결론을 먼저 내리고, 논의는 나중에 하자는 것일까? 외국의 핀테크 사례를 한국의 실정과 비교하는 것도 좋지만, 해외 선진 금융사의 지배구조와 경영 시스템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돌아보는 노력이 우선일 것이다.

핀테크보다 시급한 것은 국내에 금융 규제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다. 금융권의 규제를 손본다면 그것은 핀테크를 위해서가 아니라, 금융산업의 부조리한 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궁극적 지향점은 핀테크 자체가 아니라, 금융 소비자를 포함한 사회 전체 구성원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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