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딱지떼기①] “몸으로 하는 마지막 말”… 수습기자들의 부검 참관기

입력 2015-02-09 17:34 수정 2015-02-1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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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8기 수습기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정다운, 유지만, 오예린, 정경진 순. (장세영 기자 photothink@)

온라인 바람을 타고 언론 매체의 수는 많이 늘어났지만, 예나 지금이나 ‘기자의 문’은 좁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기자가 되었더라도, 오롯이 한 명의 기자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자성과 눈물, 그리고 희열을 겪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담금질하는 과정을 겪는다. 그래서 기자라는 업(業)은 시작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이투데이에서 새로운 시작에 나선 수습기자들이 ‘수습’ 딱지를 떼기 위한 3개월간의 시간을 한 주에 한 번, 글로 옮긴다. 아직 모든 것에 서툴지만, 열정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들의 ‘좌충우돌 90일’을 응원해 본다.

한 남성이 알몸으로 수술대에 누워 있다. 60대 남성으로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가실 리가 없다”는 유가족의 주장에 그는 부검대에 눕게 됐다. 조성진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조사관은 “시신의 상태가 매우 온전하다”며 “운이 좋은 편”이라는 말을 건넸다.

잠시 후 부검을 맡은 법의관과 법의조사관이 들어와 시신의 배를 가르고 장기를 꺼내 조직을 채취했다.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장면이 현실에서 펼쳐지자 반사적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를 보던 조 조사관이 “현장에서는 이보다 더한 것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 기자인데.’ 고개를 들고 눈에 힘을 줬다. 2월 4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부검 참관실의 모습이다.

이투데이 8기 수습기자들이 1월 26일부터 2주간 진행된 한국언론진 흥재단의 ‘제240기 수습기자 기본교육’에 참가했다. 교육은 언론계에 대한 기본 지식부터 기사 쓰기, 보도사진 찍기, 자료검색 등 기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실무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다.

부검 참관은 수습기자 교육의 한 과정이다. 법의관 1명에 법의조사관 2명, 사진사 1명 등 4명이 한 팀을 이뤄 부검한다. 시신의 외부 상태를 눈으로 살피고 나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목 아래부터 복부까지 갈라 심장과 폐, 소장, 췌장, 대장 등 장기를 꺼내 조직을 채취한다. 이후 두개골과 목에 대한 검사가 끝나면 꺼냈던 장기들을 다시 넣은 후 복부를 꿰매 처음 모습으로 되돌린다.

부검은 팀 단위로 이뤄지며 한 팀당 하루에 최대 7건의 부검을 맡는다. 통상 한 명당 1년에 200구가 넘는 시신을 접하게 된다. 선진국이 1년에 100~150건의 부검을 하는 데 비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참관을 안내한 조 조사관도 12년간 근무하며 1만2000건이 넘는 부검에 참여했다고 한다. 지난 2013년에는 필리핀 쓰나미 재해 현장을 찾아 사망자 신원 확인 작업도 펼쳤다. 오랜 시간 시신을 마주하다 보니 이제는 누구의 알몸을 봐도 별다른 느낌이 없다고 한다.

업무량이 많다 보니 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한다. 연 22일의 휴가 중 절반도 채우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는 주말에도 당번제로 돌아가며 부검을 할 정도다. 하지만 대충 할 수는 없다. 조 조사관은 “부검은 돌아가신 분이 몸으로 하는 마지막 말”이라며 “고인의 마지막 말을 듣는다는 생각에 매번 온 힘을 다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자도 법의관처럼 누군가의 ‘말’을 듣는 직업이다. 대상이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일 수 있고, 재난이나 흉악한 범죄 현장일 수도 있다. “네가 흔들리면 기사도 흔들린다”고 말한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말고 침착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습’ 딱지를 떼고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늘 가슴에 새기고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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