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예상치 못한 ‘전임자의 트랩(trap·덫)’에 빠졌다. 한 회장은 신한사태와 관련해 시민단체로 부터 고발된 라응찬 전 회장이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신한금융은 애써 말을 아끼고 있지만 회사 안팎으로 한 회장과 신한금융이 아직까지 라 전 회장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김정태 회장도 김승유 전 회장 시절 작성한 ‘2.17 합의서’가 하나ㆍ외환의 조기합병의 발목을 잡으면서 리더십의 타격과 함께 3월 연임에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됐다. 앞서 김 회장은 주장한“조기 합병은 하나금융이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회”라는 명분이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금융이 본격적인 해체 수순에 들어가며 금융권 맞수로 떠오른 한 회장과 김 회장이 공교롭게 전임자 리스크에 노출됐다. 앞서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그룹 수장 자리에 오르며, 가장 큰 핸디캡이었던 전임자의 그림자에 벗어나 자기만의 색깔을 앞세운 경영전략으로 각자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문에서 리더십에 타격을 받고 있다. 한 회장은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과 불법 계좌조회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라 전 회장 악재에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신한사태와 관련한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마무리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갑작스런 라 전 회장의 농심 사외이사 선임으로 인해 사안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서진원 신한은행장 공백과 맞물리면서 비교적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탄탄하다고 자부했던 최고경영자(CEO) 승계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이상기류까지 포착되고 있다. 신한사태를 일으킨 라 전 회장이나 신상훈 전 사장의 측근들로 분류됐던 인사들이 또 다시 등장하고 있다.
김 회장 역시 김 전 회장이 작성했던 2.17 합의서로 인해 그의 조기통합 로드맵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2.17 합의서는 김 전 회장이 지난 2012년 2월 17일 외환은행 노조와 만나 작성한 합의로 ‘최소 5년동안 외환은행의 독립 경영을 약속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최근 법원이 이 합의서의 효력을 인정해 6월말까지 통합 절차를 중지시켰다. 김 회장 입장에선 조기통합 성과를 바탕으로 연임에 도전하려 했기 때문에 이번 법원의 판결이 연임가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