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예능엔 왜 워킹맘 없나요 [이꽃들의 36.5℃]

입력 2015-02-16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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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셋은 정말 힘들다. 남자들은 모른다. 그러니까 아내에게 잘해달라.” 전직 요정 S.E.S 슈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밤에 라디오를 해야 하는데, 딸 아리가 전화 와서 그냥 울 때 가슴이 너무 아팠다…그 옆에서 밤새 펑펑 운다. 이럴 때는 애기한테 너무 미안하다.” SBS 박은경 아나운서가 털어놨다.

동물부터 아기, 군대까지 리얼함을 추구하는 예능의 소재가 다양해지고 있다. 결혼 생활을 그려낸 예능 프로그램 역시 꾸준한 인기를 끄는가 하면, 속속 등장하고 있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가 시즌을 거듭해 이슈를 낳고 있다. SBS ‘자기야-백년 손님’은 사위와 처가의 관계를 그린 각종 에피소드로 웃음보를 자극한다. 시청자의 판타지를 자극하고, 공감을 유도하는 에피소드의 결혼 예능은 쏟아지고 있다. 반면 적나라한 현실 문제를 묘파하는 프로그램은 찾아 볼 수 없다.

9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며느리 특집’은 6.1%(닐슨 코리아 제공)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예능에 떴다 하면 포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는 일명 ‘재벌가 며느리’ 최정윤과 서울대 출신 SBS 박은경 아나운서, 전직 요정 S.E.S 슈가 출연했다. ‘힐링캠프’에선 여지없이 이들의 화려한 수식어가 이름 앞에 내세워졌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최정윤은 “남편이 그룹의 후계자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가 하면, “1년에 10번, 한 달에 한 번꼴로 시댁 제사를 지낸다. 한 달 전부터 드라마 촬영팀에 양해를 구해놓는다”고 나름의 고충을 털어놨다. 또, 박은경 아나운서는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다 허리가 삐끗한 일,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만두를 빚다 새벽에 출근한 일 등을 전했다. 슈 역시 “스트레스 받을 시간이 없다. 하루가 모자랄 정도다. 거울도 못 본다. 오히려 계속 붙어서 육아를 하면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줄 수 있겠다 생각도 들었다”고 마음 깊숙한 이야기를 꺼내 시청자의 공감을 일으켰다.

지난 12일 현대경제연구원의 ‘우리나라 중산층 삶의 질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 맞벌이 가구 비율이 1990년대 15.1%에서 2013년 37.9%로 크게 늘어났다. 또한 지난해 7월 여성문화네트워크가 발표한 ‘워킹맘 고통지수’ 통계 자료에 따르면, 결혼 여성의 10명 중 9명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게 고통스럽다”고 밝혔다. 맞벌이 가구 비중이 늘어남과 동시에 일하는 엄마들의 육아 노동은 더욱 가중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결혼 가정이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 육아 문제로 경력 단절을 겪거나, 그렇지 않으면 워킹맘으로서 육아 부담을 홀로 껴안기 십상이다. 이는 급속한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고, 초고령화 사회로 나아가는 원인이다.

“일과 육아의 양립? 나도 엄마지만, 5대 5는 불가능하더라. 여자한테만 지워지는 몫이 따로 있다. 육아할 때 엄마들이 가장 피폐해진다. 녹화 도중 별 얘기가 아닌데도 눈물 흘리던 저 역시 그랬다.” 방송인 박경림의 말이다.

TV 속 부부들은 시시콜콜한 감정 다툼, 재력 과시 또는 보기 좋은 데이트만을 보여줄 뿐이다. 결혼과 부부 생활, 리얼 육아 예능을 앞세운 프로그램은 넘쳐나지만, 과장된 에피소드로 시청자의 판타지를 높이거나 짧은 위로를 건넬 뿐이다. 일하는 엄마들이 부딪히는 현실과 이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 없이 결혼을 다룬 예능에는 그 한계가 엄격히 존재한다. 현실 속에서 여전히 육아와 가사 분담, 일과 가정의 양립의 문제는 빛 좋은 개살구다. 이를 본격적으로 다뤄 사회 공감대를 형성해 생명력을 지니는 프로그램의 탄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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