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집안 어른께 세배를 하고 성묘를 마친 뒤에는 친지와 이웃을 찾아다니며 새해 인사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풍습을 거의 보기 어렵게 됐다. 원래는 일일이 개별적으로 찾아가는 게 예법이었다. 그런데 강릉 위촌리처럼 주민 전체가 합동 세배를 하는 도배례(都拜禮)를 400년 이상 행하는 곳도 있다.
새해 인사는 초사흗날 정도까지 다닌다. 그러나 대보름 이전에만 찾아가면 큰 흉으로 여기지 않았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설날부터 사흘 동안 모든 남녀가 왕래하느라 떠들썩하고,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길거리에 빛나며, 아는 사람을 만나면 “새해에 안녕하시오?” 하고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한다고 돼 있다. 충남 천안에는 “처갓집에 초승에 세배를 가면 올겨[논]를 세 마지기 얻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다른 곳을 제쳐두고 처가부터 온 게 기뻐서 장인 장모가 뭔가 준다는 뜻이다.
웃어른께 세배를 올릴 때 뭐라고 하나? 아마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십시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 입버릇처럼 “이제 죽어야지” 하는 노인들도 이 덕담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덕담이야 건강 취직 결혼 득남에다 돈 많이 벌라는 등 다양하지만 나이든 분들에게 드릴 말씀은 많지 않다.
오래오래 사는 것은 결국 만수무강(萬壽無疆)이다. 만년을 살아도 끝이 없다는 말이니 한없이 길게 사시라는 뜻이다. ‘시경’에서 나온 말이다. 강(疆)은 지경, 강, 한계, 끝 이런 뜻을 가진 단어다. 조선 전기의 서예가 김구(金絿·1488~1534)의 시조에 ‘오리의 짧은 다리 학의 다리 되도록에/검은 가마귀 해오라비 되도록에/향복무강하사 억만세를 누리소서’라는 게 있다.
향복무강(享福無疆)은 끝없이 복을 받으라는 표현이다. 대단한 과장이지만 덕담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