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여론조사로 총리인준을?

입력 2015-02-1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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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제 막 지나간 일이지만 한마디 하자. 여론조사로 총리 후보 인준을 결정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다. 여론조사 활용과 관련해 앞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소개한다. “여론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속에 미래를 위한 비전과 전략까지 다 있지는 않다. 정치인과 정치지도자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 늘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일했다. 종합부동산세 등 이런저런 개혁 작업들을 추진하면서 때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그 매를 귀하게 여겼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여론이 지닌 한계를 생각하며 일을 했다.

여론은 많은 사람, 즉 일반 대중의 정서와 의견이다. 그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우선 그 주체인 대중은 국정에 관한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갖지 못한다. 그럴 수 있는 자원이나 시간적 여유도 없다. 또 관심도 약하다. 자연히 여러 변수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일시성과 가변성이 그 특징이라 하기도 한다.

이번의 총리 인준 문제에서도 많은 국민은 그저 들리면 듣고, 보이면 보고 했을 것이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문제라면 또 다를 수 있다. 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 데다 투표권까지 있으니 관심이 더 클 수 있다. 정보를 얻고 판단할 시간도 길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번 일은 그런 경우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 여론을 조사해 총리 인준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제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승계하고 있다는 정당과 그 지도자가 했다? 뭔가 잘못됐다.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먼저, 어차피 의회주의가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틀림없는 이야기다. 의회제도는 그 기능적 한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 국회는 그 천박한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를 변호하거나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흔히들 하는 것처럼 이번 제안을 의회주의를 무시했느니 어쩌니 하는 관점에서 비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잘못된 의회주의를 보완할 직접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공론을 바로 세워 이를 정치과정과 행정과정에 반영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 각종의 이해관계 집단과 신념 집단과의 대화와 토론을 활성화하고, 엉망이 되어 있는 지방분권 질서 등을 바로잡아 제대로 된 참여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것 등이 아닐까?

여론을 있는 그대로 불러들여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소음민주주의(dinocracy)’를 불어올 가능성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욕되게 할 수도 있다. 최근 일부 정당이 했듯이 가볍고 정서적인 의견이 주도하는 SNS를 그대로 끌어들이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또 다른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여론조사 결정방식은 이미 해 오던 일 아니냐? 2002년 대선 때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도 그랬고, 지금도 각 정당이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를 결정하곤 하지 않느냐?

먼저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여론조사는 정해진 결정 메커니즘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다. 양 후보자 사이의 합의로 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앞서 말한 것처럼 대통령 선거 때의 일이다. 긴 기간에 걸쳐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일이다.

정당이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일은 말을 하지도 말자. 오죽 정당이 정당 같지 않고, 당원이 당원 같지 않으면 그렇게 하겠나. 미국의 오픈 프라이머리, 즉 개방형 경선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정말 비교할 걸 비교해라.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지 이번 제안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을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답은 분명하다. 여론을 앞세워 문제를 회피해서도 안 되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욕되게 해서도 안 된다. 올바른 비전과 전략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헌법적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리하여 일그러진 국회의 상을 조금이라도 바로 세워야 한다. 또 여론을 바르게 이끌 수도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정치인과 정치지도자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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