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가 술에 취해 적색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운전자 과실보다 보행자 과실이 더 크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합의17부(재판장 이창형 부장판사)는 교통사고 피해자 A씨가 가해자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판결이 확정되면 B씨는 317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 B씨의 배상액이 1심에 비해 1100만원 줄어든 것이다.
재판부는 "B씨가 사고를 일으킨 책임이 있지만, A씨에게도 술에 만취해 좌우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심야의 어두운 횡단보도를 보행자 정지신호에 건너다 사고를 당한 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A씨는 2011년 4월 오후 11시39분께 경기도 한 도시의 편도 2차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B씨가 운전하는 SUV 차량에 치였다.
사고 당시 술에 만취한 A씨는 보행자 신호등이 빨간불이었는데도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했고, 나중에 의식을 되찾은 뒤에도 사고 순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이 사고로 A씨는 왼쪽 턱뼈 일부와 치아 한 개가 부러졌고 이마와 콧등, 턱 끝이 부분적으로 함몰돼 1∼3㎝가량의 흉터가 여러 군데 남았다. 병원에서는 성형수술을 해도 흉터가 일부는 남는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고에서 정지신호에 길을 건넌 보행자와 전방주시를 게을리 한 운전자의 과실이 각각 절반씩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A씨가 입은 경제적 손해의 절반에 위자료 840만원을 더해 4300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