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나이 표현에도 성(性)이 있다

입력 2015-02-2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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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명절은 왜 있는 거야!” 설 연휴 집에 다녀온 친구가 모임에 나와 투덜댄다.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인 그가 충청도 시골 마을 어르신들 사이에선 처량하고 궁상맞은 ‘노처녀’로 전락해 애물단지 취급만 받았단다. 노처녀, 올드미스…. 언제 적 말인가.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결혼적령기가 없어졌다. 여자에게 나이는 물론 결혼 여부를 묻는 것조차도 실례가 돼 버렸다. 노처녀, 올드미스란 말은 유통되지 않더니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대신 슈퍼우먼, 골드미스 등의 신조어가 폭넓게 쓰이고 있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말도 바뀐다.

기업체 임원으로 조직에서 주로 큰소리를 치는 이 친구는 나만 만나면 언어적 타박을 받는다며 너스레를 떤다. “마흔여섯 불혹의 나이에…”라는 이상한 표현을 입버릇처럼 쓰기 때문이다.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志學), 서른에 뜻을 세우고(而立), 마흔에 생각이 헛갈리지 않고(不惑), 쉰에 천명을 알고(知天命), 예순에 순리를 깨달았다(耳順)’고 공자가 말한 정신의 나이 중 ‘불혹(不惑)’은 딱 ‘마흔 살’을 뜻한다. 따라서 마흔한 살부터 마흔아홉 살에는 쓸 수가 없다.

내친김에 나이와 관련한 말을 살펴보자. 나이를 나타내는 말에도 성(性)이 있다. 따라서 나이를 표현할 때는 남자와 여자를 잘 구분해 써야 한다. 한창 꽃다운 나이인 스무 살 안팎의 남자는 약관(弱冠)이고, 여자는 방년(芳年)이라고 한다. 국어사전에서 방년의 용례를 찾아보면 ‘방년 십팔 세/방년 스물의 꽃다운 나이/방년의 처녀’ 등으로 나와 있다. 방년이 정확히 스무 살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안팎의 한창때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방년 서른 살’ ‘방년 마흔 살’ 등의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약관(弱冠)은 ‘예기(禮記)’에 실려 있는 말로, 사람이 태어나서 스무 살이 되면 약(弱)이라 하며 비로소 갓(冠)을 쓴다는 데서 유래했다. 즉, 아직 건장하지 못하다든가 또는 비로소 성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 역시 스무 살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최근엔 ‘스무 살 혹은 그 전후의 젊은 나이’란 의미로 확대돼 폭넓게 쓰인다.

‘묘령의 여인’의 ‘묘령(妙齡)’도 방년과 비슷한 말로 스무 살 안팎의 여자를 뜻한다. 한자 ‘묘(妙)’는 묘하다, 예쁘다, 젊다는 뜻으로 묘령은 말 그대로 ‘가장 예쁜 여자 나이’다. 얼마 전 인터넷 매체에서 ‘묘령의 할머니’ 기사를 보고 실소한 적이 있다. ‘묘령의 중년’ ‘묘령의 아줌마’ 등의 표현은 묘령을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이란 뜻으로 착각한 탓이다. 또 연예·스포츠지 등의 여자 연예인 근황 기사에 ‘ㅇㅇㅇ, 묘령의 남자와 빗속 키스 포착!’ ‘ㅇㅇㅇ, 묘령의 남자와 여행 중’ 등의 제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묘령을 ‘정체를 알 수 없는’ 등의 의미로 잘못 표현한 것이다. 스무 살 안팎의 남자를 말하려고 한 것이라면 묘랑(妙郞)이라고 써야 맞다.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주자(朱子)는 ‘소년은 이노(少年易老)하고 학난성(學難成)이니 일촌의 광음(一寸光陰)인들 불가경(不可輕)이라…’라고 시를 읊었다. 어린 사람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아주 짧은 시간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다. 소년이라는 말에 가슴이 설레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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