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본능은 있다 [김윤정의 삐딱하게]

입력 2015-02-27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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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 포스터)

“남자는 어쩔 수 없나 봐.” 어제 이병헌의 귀국 기자회견을 함께 보던 친구가 한탄했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발언 내용이 나오자 “아…잘난 남자랑 살려면 어느 정도는 참아야 하나?” 한참 듣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마치 한 여자에 정착하지 못하고 새로운 여자와 만남을 꿈꾸는 남성의 욕구는 당연한 본능이니 그저 받아들여라, 잘난 남자는 어쩔 수 없다라고 자꾸만 이병헌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남녀관계에서 남성에게 ‘본능’이라는 이름의 면죄부를 주는 일이 비단 개인간의 연애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륜문제, 성범죄 관련 문제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많은 아내들이 살면서 남편의 외도사실을 알고도 용서하거나, 성범죄의 가해자가 음주상태였다는 점이 밝혀지면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되는 것도 남성의 본능은 특히 음주상태에서는 자제하기 어렵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최근 보도되고 있는 연예인들의 사건사고를 보자니, 여기가 대한민국인지 할리우드인지 헷갈릴 정도다. 바람피는 잘난 남편을 참고사는 톱스타 부부는 베컴 부부 정도나 있는 줄 알았고, 여자친구를 때리는 톱스타 남친은 크리스 브라운 뿐인 줄 알았다. 언젠가부터 해외토픽에서나 보던 황당한 범죄들이 우리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듯, 헐리우드 e 뉴스에서나 보던 어처구니 없는 사건사고뉴스가 우리나라 연예계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전쟁같은 사랑’이니, ‘한 번의 실수’니 하는 말로 포장하는 말들을 듣고 있자니 남자 연예인의 사건 사고에 관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만약 이병헌이 아닌 유부녀 톱스타가 결혼 후 어린 남자연예인 지망생들과 질펀한 농담을 하다 협박을 당했다면, 김현중이 아닌 여자 아이돌이 ‘임신’이나 ‘남자문제’로 전 남자친구와 공방을 벌이고 있다면 세상의 시선이 지금과 같을까? 아마 여자는 상대방을 고소할 엄두도 못 냈거나, 앞뒤 사정 다 떠나 그저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온갖 비난과 성희롱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남자의 본능 운운하는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라는 전제를 단다. 학교에서도 사춘기에 찾아오는 소년들의 성욕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니 부끄러워하지 말라 가르치지만, 소녀의 성욕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다. 사회가 개방적으로 변하고, 교육현장에서 성을 ‘아름답고 당연한’것으로 가르치고 있다지만, 여전히 여성의 본능은 여전히 부끄럽고 감춰야 할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런 억압적인 분위기 아래 여성은 스스로 본능을 자제하고 감추는 방법을 터득해나가지만, 남성들은 점점 자신의 본능을 자제하고 감추어야 할 필요성을 잃어간다.

연예인의 일탈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 속에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본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누구나 본능은 있다. 이병헌과 김현중의 사생활 문제에 ‘남자의 본능’이라는 면죄부를 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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