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터닝포인트] 예스맨으로 전락한 사외이사

입력 2015-03-0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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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부 차장

주요 기업들이 주총 시즌에 돌입했다. 이들은 일찌감치 사외이사 선임을 주요 안건으로 앞세웠다. 사외이사 선임은 기업 주총에서 중요한 안건 가운데 하나다.

사외이사란 기업경영 전반에 걸쳐 폭넓은 조언과 전문지식을 전달하는 자리다. 기업 외부의 비상근 이사직으로 이사회에 참석해 기업 경영활동을 감시하고 자문을 한다. 그만큼 해당 분야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적절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온 인물들이 사외이사로 물망에 오른다.

반면 해마다 주총시즌이면 사외이사의 당위성이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 ‘관피아 척결’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지만 기업은 예외다. 올해도 사외이사 선임에 전직 장관, 사정기관 출신 법조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의 역할론은 더 큰 문제다. 2013년 기준 10대 재벌 계열사 사외이사는 총 341명. 이 가운데 95.9%는 이사회에서 단 한 차례도 이견을 내지 않았다. 91개 상장사가 평균 10.5회의 이사회를 열어 2151건의 안건을 처리했지만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안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보류 그리고 수정가결 안건이 고작 3건이었다. 그러고도 기업별로 1억원 가까운 보수를 챙겼다.

주요 임원의 보수한도 상향, 계열사 유상증자 참여 등 일반주주의 이해와 충돌할 수 있는 주요 안건에서도 사외이사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대주주와 경영진 편에서 일사천리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사외이사들의 ‘역할 부재’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 나가 머릿수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안일함도 팽배해졌다. 특정 분야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채 사외이사 직함을 맡게된 만큼 “알아서 하셔라”는 게 이들 대부분의 입장이다.

이런 병폐는 기업에서 시작한다. 사정기관 출신이나 정계은퇴 인사를 데려와 적당한 직함을 얹어주고 분에 넘치는 보수를 제안한다. 혹시 모를 정부의 기업 압박을 견제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적절하기 때문이다.

사외이사 제안을 받아들이는 이들도 문제다. 고위직 은퇴 이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상황에 대기업 사외이사직 제안은 적절한 대안이기도 하다. 한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반기로 갈수록 이사회 출석률도 저조해지는 행태만 봐도 이들의 역할론에 의심을 품게 된다.

사외이사는 자문역일 뿐 기업경영에 대한 책임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유동성 위기 탓에 그룹이 해체된 STX그룹이 대표적이다.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때마다 경영진의 결정에 ‘찬성’으로 일관했다. 결국 주요 계열사들은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일반주주들은 피해를 떠안았다.

올해부터 국민연금이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첫 번째로 앞세운 주주권이 ‘사외이사 선임건’이다. 무시할 수 없는 견제세력이 생긴 만큼, 이번 주총에서 주요 기업의 사외이사 선임건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또 국민연금이 얼마만큼 적절한 견제세력으로 떠오를지 지켜볼 참이다.

자본시장부 차장 jun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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