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시대가 온다] 가상현실 대중화… 포르노에 달렸다?

입력 2015-03-09 10:48 수정 2015-03-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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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비디오·인터넷 보급 19禁 영화가 앞당겨

▲해외 VR용 포르노 사이트에 등장한 VR용 영상. 해당 사이트 캡처

“이런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에로 영화가 3D로 나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3D TV산업이 활성화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2009년 당시 스카이라이프의 대표 이몽룡 사장은 사업 제휴 체결식에서 이런 발언을 한다. 3D TV와 3D 영상물은 기존 2D보다 현실감과 입체감이 높기 때문에 다양한 에로 영화가 3D로 나올 경우 3D TV산업이 발전할 것이란 내용이다. 물론 3D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농담 반 진담 반 했던 이야기다.

3D에 앞서 가정용 비디오와 인터넷 보급을 앞당겼던 포르노가 ‘가상현실(VR)’의 대중화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거나 기술이 변곡점을 맞을 때마다 포르노는 IT 기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포르노 IT 기술의 마중물 역할은 낯부끄럽고 불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IT 발달사의 단면이기도 하다.

◇기술은 준비됐다… 관건은 콘텐츠= 가상현실 웨어러블 기기인 VR는 모바일 또는 컴퓨터와 연동해 콘텐츠를 더욱 생생하고 몰입감 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가상현실 헤드셋이다. 오큘러스를 비롯해 삼성 ‘기어VR’ 등이 현재 VR 기기 시장 입지를 구축했고, 대만 HTC, 소니 등도 앞다퉈 VR 기기를 선보이고 있다.

구글은 2014년 개발자회의(I/O)에서 스마트폰 사용자가 저렴한 가격으로 가상현실을 쉽게 체험하도록 ‘카드보드(VR 기기 설계도면)’ 오픈소스를 공개하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시중에 나온 VR 헤드셋만 20여개에 이른다.

VR 헤드셋과 기술은 이미 준비돼 있다. 관건은 콘텐츠다. 당장 VR용 콘텐츠로 실현될 것으로 보이는 분야는 포르노 업계다. 최신 3D그래픽 기술과 사진을 통해 오브젝트를 형성하는 포토그래메터리(Photogrammetry) 기술, 그리고 포르노 영상의 결합은 포르노 콘텐츠의 신세계를 열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는 VR용 포르노가 상업제작을 개시했다. 사이트에는 1분 남짓한 VR용 포르노 트레일러를 수십편 올려놓고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는 15일간 사용할 수 있는 콘텐츠 이용권을 5.95유로(약 7200원), 3개월 이용권은 월 9.95유로(약 1만2000원), 1년 이용권은 월 7.5유로(약 9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호주 가상현실협회의 스테판 페르나르 회장은 지난달 호주 ABC 뉴스와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실제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가상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며 VR의 부정적 사용에 대한 우려에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새로운 기술에는 악용의 여지가 있다. 책임감 있게 이용하면서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의 성인물 노출 지적에는 공감하면서도 VR용 포르노 콘텐츠의 시장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VR 헤드셋으로 포르노를 본 사람들의 반응을 담은 동영상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직접 포르노를 시청한 뒤 “놀랍다” “마치 현실 같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VR 포르노 콘텐츠를 구매하겠냐는 질문에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추천하겠다” 등의 대답을 했다. VR 포르노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VHSㆍ블루레이 진영에 승리 가져다 준 포르노= 성인 영화업체는 신기술을 한발 앞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포르노 고객들은 전통적으로 가정용 비디오, DVD 플레이어, 초고속 인터넷 등을 남보다 먼저 사용하면서 기술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소니가 포르노 제작업체의 입김에 따라 울고 웃은 사례는 전자업계에선 유명하다. 1980년대 베타 방식으로 가정용 비디오 시장 석권을 노렸던 소니는 VHS 방식을 앞세운 마쓰시타에 패하며 쓴맛을 봐야 했다. 당시 소니와 마쓰시타가 영상 저장장치의 표준을 놓고 벌인 경쟁에서 포르노 업계가 VHS 방식을 채택한 것. 이후 VHS 방식은 안방 시장을 휩쓸었다.

그러나 2000년대 벌어진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 표준규격 경쟁에서는 소니가 웃었다. DVD 표준규격 방식을 놓고 소니의 블루레이 방식과 도시바의 HD DVD 방식이 경쟁을 벌였는데, 콘텐츠를 공급하는 미국의 영화사 등이 잇따라 블루레이 방식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소니가 승리한 것. 포르노 업계의 외면에 도시바는 2008년 HD DVD 방식에서 철수했다.

비디오 등 영상가전 시장에서 포르노업계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지난해에는 미국 포르노업체 너티아메리카가 수십만 달러를 투자해 성인 영상물을 전부 초고화질인 UHD 콘텐츠로 제작하기로 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이 회사는 37개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성인 영상물을 연간 5000편 이상 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영상가전 시장에서는 포르노업계가 갖는 영향력에 따라 UHD TV 대중화도 그만큼 빨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포르노는 새로운 기술이 나타날 때마다 적잖은 영향을 미쳤고, 첨단기술의 킬러 콘텐츠로 꾸준히 언급돼 왔다. 가장 원초적이고 자극적 콘텐츠인 성인물이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지갑을 열게 하고, IT기술 보급을 앞당겨 왔다는 주장이다. 포르노가 VHS, 블루레이, 인터넷, 3D TV, UHD TV에 이어 VR 시장 확대와 보급도 앞당길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는 이유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각종 VR 헤드셋이 나오고 업체들이 앞다퉈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콘텐츠는 보편화되지 않았다”며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성인 영상물이 VR 확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VR 기기 제조사들도 이를 통한 수요 창출을 기대하는 눈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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